이제 집권 3년 차, 전반전은 끝났다. 문재인 대통령은 2년 전 취임사에서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대통령이 되겠다.”라며 ‘공정하고 정의로운 나라’ 등 멋진 신세계를 약속했다. 불현듯 취임사의 이런 다짐이 떠오른다.
“불가능한 일을 하겠다고 큰소리치지 않겠다.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말씀드리겠다.”
아직 3년 남은 것 인지, 불과 3년 남은 것 인지. 선택지가 놓여있다. 당초의 목표에 얼마만큼 가까워졌는가. 갈수록 주저앉은 지지율은 국민이 매겨준 중간 성적표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차원의 발상이 시급한 때에 이르렀다. 밥버포드의 책 ‘하프타임’에 따르면 하프타임의 목적은 상황을 점검하고 경청하고 배우는 것. 말하자면 전반의 실적은 어땠는지 어떤 실수나 오류가 있었는지 평가해 후반기 개선 전략을 세우는 귀중한 시간이다.
국적 운영도 하프타임 플랜을 적용하면 새로운 접근이 가능할 것이다. ‘태산 같은 자부심을 갖되 누운 풀처럼 스스로를 낮추라’ 는 불경의 말씀이 있다. 그런 바탕 위에서만이 남은 임기를 성공으로 이끄는 자세 전환도 궤도 수정도 이뤄질 터다. 승패는 후반에서 결정된다. 과거를 합리화하는 데 급급하다면 후반 반전은 기대할 수 없다.
올해 선종 10주기를 맞은 김수환 추기경의 어록에서 혹시나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까. 2003년 1월 1일 자 동아일보 대담을 통해 소설가 최인호 씨와 만난 추기경은 이런 질문을 던졌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도 긴 여행이 무엇인지 아세요?” 모른다는 답변에 추기경은 손을 들어 자신의 머리와 가슴을 가리키며 말했다. “바로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여행이지요.”
평소 추기경이 즐겨 했던 비유가 있다.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 데 70년이 걸렸다. 머리와 입으로 하는 사랑에는 향기가 없다. 진정한 사랑은 이해, 관용, 포용, 동화, 자기 낮춤이 선행된다.’
사랑뿐이랴, 정의도 공정도 마찬가지 아닌가. 정책실험은 2년으로 충분하다. 정부가 지금 알게 된 것들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과연 같은 길을 걸어왔을까.
그동안 최저임금이 올라 시름을 던 저소득층이 있는 반면 장사를 접을 수밖에 없어 눈물을 흘린 영세기업과 자영업자들도 있었다. 정책 효과를 지금처럼 훤히 알아볼 수 있었더라도 정부는 그때 그런 결정을 했을까. 문재인 정부는 결정적 분기점에 섰다. 앞으로 3년은 달라져야 한다.
지금 청년 체감 실업률은 25%를 웃돈다.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높다. 소상공인 셋 중 하나는 지난 1년 동안 휴·폐업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한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 정부는 억울할 것이다.
대통령은 청와대에 일자리 상황판을 걸었다. 관료들은 자면서도 일자리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를 너무 쉽게 생각했다. 일자리 문제는 구조적 저성장의 흐름, 기술 변화의 속도, 정치사회적 요인까지 고려해야 풀 수 있는 것이다. 상상력은 모자랐다. 문제의 복잡성에 비해 대응은 너무 단순하고 기계적이었다. 노동의 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줄어든다는 상식은 무시됐다.
정부는 사람 중심 경제를 외치면서도 통계와 관념만으로 이야기했다. 통계는 숫자놀음이다. 평균에 가려진 개개인은 사라진다. 정부와 지자체의 일자리 대책은 여전히 현금을 뿌리는 데 머무르고 있다. 진영논리를 넘어 실용적으로 사고하고 잘못된 것은 바꿀 수 있어야 한다. 그게 바로 일자리 정부의 기치를 든 이들이 보여줘야 할 진정한 용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