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신문 홈페이지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메인 메뉴


콘텐츠

컬럼/기고

일본을 객관적으로 알자

조부광 정치학박사

군산신문(1004gunsan@naver.com)2019-08-23 11:14:56 2019.08.23 11:14:56 링크 인쇄 공유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네이버



    

  우리나라는 1945년 8월 15일 일본 식민통치에서 벗어났다. 그 해에 태어난 신생아들을 해방둥이라 부른다.(필자포함) 74년이 됐다. 지난 세월 해방둥이들은 무얼 하고 살아왔는지 격화되는 한․일 관계를 바라보며 자괴감이 든다. 아니 당혹스럽다.

 ‘당혹스럽다’는 사전적으로 정신이 헷갈리고 생각이 막혀 어찌할 바를 모른다는 의미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뜻이다. 자고 나면 새롭고 낯선 것이 일상인 하이테크놀로지 시대에 70대 중반의 ‘기계치’로 산다는 것은 매일 크고 작은 당혹감을 겪는 일이다. 실제적인 거의 모든 일이 스마트폰과 컴퓨터 세계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 오프라인 세계는 껍데기만 남은 느낌이다. 체면 구길 바에야 차라리 새로운 일은 아무것도 하지 말아 버릴까 하는 생각으로 문자 보내는 것도 지금껏 배우지 않았다.

 그러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할 것 같다. 일본의 폭력적인 수출 규제로 인한 일련의 사태 속에서 우리 정부와 기업과 국민은 치열하고 대응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경제의 희망이며 30년 역사를 가진 반도체 산업이 주요품목을 일본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해 왔다는 점은 한편 당혹스럽기도 하다. 일본과 전 방위적인 분쟁과 갈등을 항시적으로 겪으면서도 국제적 분업이라는 공생관계를 해온 모양새가 아슬아슬해 지금뿐 아니라 앞날이 더 걱정되기도 한다.

 국제관계에서는 영원한 동맹도, 영원한 적도 없고, 오직 영원한 국가 이익만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일본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라는 지점에서 최근 불거진 한․일 갈등을 생각해 보아야할 것 같다. 외교는 겉과 속이 다르다. 속으로는 분노가 끓고 그래서 ‘한방’을 준비하지만 겉으로는 웃음을 띠고 깍듯한 의전을 보여준다. 언젠가 뒤통수를 칠 수도 있지만 그때까지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모호한 언어, 절제된 태도로 실리를 챙긴다.

 사람끼리 관계에서도 충분하며 감정을 드러내는 순간 출구는 좁아진다. 화해도 그만큼 어려워지고 일을 풀어 가기에도 난감해진다. 분노와 적대가 치밀어 오르더라도 그 분노와 적대가 가져올 결과를 감당할 수 있는 순간까지는 속에 담아둘 필요가 있다.

 바로 실리를 위해서다. 하물며 모호함과 절제가 지배하는 외교에서야 말할 것도 없다. 이번 한․일 갈등의 과정에서 각자가 입는 손실의 정도는 힘의 역학 관계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중국이 지난 1년 넘게 무역전쟁을 치르면서 ‘중국몽’의 시계추를 ‘도광양회(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른다)’로 되돌리고 있는 이유다. 한발 물러서서 내실을 다진 다음 훗날 진정한 승부를 도모하겠다는 전략이다.

 많은 나라들은 미국의 보호주의 무역정책에 반대한다고 하면서 중국을 지지하거나 연대하겠다고 나서는 나라가 없다. 미국 정치인들은 이념이나 가치보다는 경제적 이익을 중시하고 유권자들이 원하면 무엇이든 한다.

 결국 여기까지 왔다. 모든 것에는 기본이 있다는 것은 하나의 법칙이다. 기본이란 인재를 키우고 오랜 시간 연구와 경험을 축적하는 것이다. 제조업은 월반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일본과 단호히 맞서 싸울 것이니 국민도 단합해달라고 당부했다. 동의하고 지지한다. 치밀하고 성숙한 전략으로 맞섰으면 한다.

 

 


※ 군산신문사의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문자가 잘 보이지 않을 경우 여기 를 클릭해주세요.

카피라이터

LOGIN
ID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