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가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경우를 상상해보자. 생사를 가늠하는 일 만큼이나 어렵다는 뜻이다. 이것이 인생이요, 살아가는 모습이란다. 속세는 이토록 어려움을 견디며 고달픈 게 세상이라고 설명한다. 이를 업(業)이라 하며 업의 해결책이 바로 명상과 선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8월 2일 석초 스님(은적사 주지)은 법문에서 군산불교 108산사 회원들에게 강한 어조로 설파한다. “명상은 그윽하게 생각하는 것이고 선은 생각을 일으켜 나를 찾는 것”이라고 전제, “모든 생명체들은 마음은 체(体), 생각은 상(相), 몸(행동)은 용(用)”이라며 “체는 법신(法身)이요. 성부(聖父)고 상은 보신(報身)이며 성자(聖子)요. 용은 화신(化身)으로 성신(聖身)이라는 성격과 성품, 성질을 가리키고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고 풀이를 해준다.
◆성부 성자 성신은 불경의 가르침에서
성부, 성자, 성신을 포함시킨 내용은 그리스 밀린다왕 시대에 밀린다왕은 인도 스님에게 불법을 배워 국민들에게 알리는데 당시 로마왕인 알렉산더 스승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면서 알렉산더 왕에게 내용을 가르쳐 준다. 카톨릭 신자인 알렉산더 대왕은 교황을 찾아 예수는 하늘나라에 계시는 신의 아들인데 활동을 하늘에서 하는 것이 아니고 엄연히 땅에서 했으니 성경을 잘 만든 게 아니냐며 새로 만들 것을 명하게 된다. 교황은 신부로서 학문에 열중하는 토마스아퀴니스로 하여금 불경의 가르침을 파악해 성경을 만들도록 했다. 이로 인해 탄생한 책이 신학대전이며 이 신학대전에 마음은 성부요, 생각은 마음으로부터 나온 자식 같으니 성자요, 행동을 하는 몸은 성신이라 했다는 것이다.
석초 스님은 사람에게는 신(身), 구(口), 의(意)라는 3업이 있어 신업은 몸짓의 업이고, 구는 입으로 짓는 업이며, 의는 생각으로 짓는 업으로 불가에서 말하는 윤회(輪回)를 하는 업의 시초와 삶의 고(苦)의 시초는 당연히 의업이라고 규정한다. 의업은 마음의 상태를 말하며 파도는 물을 벗어난 적이 없듯이 기신론(起身論)에서 심생즉(心生卽)-법생(法生), 심멸즉(心滅卽)-법멸(法滅)에서 심생은 생각이요 심멸은 생각이 없어지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많이 쓰이는 한자 중 생각 념(念), 생각 상(想)과 생각 사(思)가 있다. 념은 지금 생각하는 것이 주가 되고 상은 지금 생각하되 과거 경험적인 것의 시점 즉 회상적인 것에 많이 쓰인다. 사는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미래를 생각할 때 즉 상상(想像)적인 용도에 주로 쓰인다는 해설이다.
◆명상과 참선은 자신이 할일
생각하는 것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으며 오고 가고 머무름도 없다는 것이다. 이의 해결책은 ‘명상과 참선’이 가르쳐 준다고 다시금 설파한다. 생각은 생각하는 능념(能念)과 생각이 되는 소념(所念)이 합쳐진 것으로 능념은 인식론적이고 소념은 존재하는 것으로 언젠가는 없어지는 무상한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지나간 일에 집착하고 아직 오지 않는 일에 매여 불안을 만들고 있어 이 또한 명상과 선으로 해결해야함을 강조한다.
석초 스님은 인생에서 4고(四苦)인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있으며 다른 4고는 원증애고(怨憎會苦), 애별리고(愛別離苦), 구부득고(求不得苦), 오온성고(五蘊成苦)가 있으되 미워하는 사람을 만나서 괴롭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서 괴롭고 구하는 것을 얻지 못해서 괴롭고 병들고 늙고 죽어야하는 몸이 있어 괴롭다는 뜻을 말한다. 이 또한 모두를 해결하는 것은 명상과 참선뿐이라며 법문을 마친다. 나 자신이 부처이기 때문에 명상과 참선은 자신이 하면 된다함의 설파였다. 오늘도 명상과 참선은 나를 뒤돌아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