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꽃을 피우던 성난바다는 오늘은 잔잔한 호수다. 오늘따라 쾌청한 날씨에 가을이 여무는 살랑이는 바람이 볼을 스친다.
호수에는 칠흑 같은 어둠의 길을 안내하는 빨간 등대가 돋보인다. 이를 본 나그네들은 마음의 설렘을 감추지 않을 것이다. 멀지않은 호수 끝의 투구봉으로 유명하다는 관리도, 장자봉으로 절경을 감싸고 있는 대장도, 끝이 안 보이는 수평선, 때마침 호수를 가르는 여객선과 유람선은 한 폭의 동양화다.
장자도는 고군산군도 섬 가운데 하나다. 따라서 고군산군도의 선유8경중 하나인 장자어화는 밤이면 고기잡이 배들이 밝힌 불이 불야성을 이루는데서 비롯된 야경을 말하는 것이다. 그만큼 장자도를 중심으로 한 어장이 형성된 곳으로 고군산은 물론, 봄이면 서해연안의 배들이 조기잡이를 위해 모여 들었음의 옛 풍경이다.
이른 봄이면 우리나라 서해안 전라남도 신안군의 크고 작은 섬에서부터 시작되는 조기떼들이 칠산어장인 고군산군도를 거쳐 연평도까지 올라가는 통로이다. 산길 노루길목처럼 칠산어장은 조기떼들의 길목이다.
거기에 조선시대는 황포돛대를 달고 바람에 의지하는 목선들이어서 조기를 잡으면 팔아야할 곳이 군산이나 김제 심포, 청하, 부안 곰소포구까지 가야 하는가 하면 멀게는 충남 강경까지 가는 불편함을 겪어야 했다. 이를 위해 조선시대에 접어들면서 지금의 군산수산업협동조합 전신인 장자도에 어업조합 형태의 판매장이 형성되는 등 어민보호자구책이 시작되는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런 배경에 따라 칠산어장에 모이는 배들은 자연히 장자도에 모여들기 마련으로 밤의 꽃인 장자어화가 탄생된 오늘의 어업발달사의 하나가 된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면서 고군산군도 내에서는 최초로 장자도에 고군산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가 설립돼 각 섬에서는 장자도로 초등교육을 받으러가는 학생들이 있기도 했다.
이처럼 장자도는 고군산군도의 수도역할을 한 셈이다. 물론 선유도가 중심지이지만 당시에는 장자도가 상업(생선판매)의 중심지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장자도는 자연의 풍광으로도 유명하다. 장자도 해변가에서 커피숍을 운영하는 윤홍문(67) 사장은 과거에는 ‘어화장자’였지만 이제는 ‘미학장자’라는 표현을 한다.
그만큼 아름다운 천혜의 절경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개업한 지는 몇 년밖에
안 되지만 손님들의 유형을 보면 “전국에서 찾아오며 특히 관리도를 바라보는 호수 같은 바다와 주변의 풍광은 동해안, 남해안 전국 어느 곳보다 우수함을 자랑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과거에는 선유도에 관광객들이 몰려들었지만, 지금은 선유도에 오면 당연코스가 장자도”라는 것이다. 특히 “장자할머니의 전설이 담겨진 유래와 바위산의 등산과 장자도를 중심으로 한 주변의 풍광은 찾는 이들을 매료시키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강조한다.
또한 “새만금과 연결돼 있는데다 옛 섬이 아닌 육지로 수도권 등 전국 어디서나 승용차편으로 2~3시간이면 찾을 수 있어 사계절 관광지로 발돋움하고 있다”고 덧붙인다.
나는 윤 사장의 설명을 듣기 전에 고군산 첫 번째 섬 야미도가 내 고향이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애정을 갖고 있다. 또한 고군산의 역사를 잘 알고 있는 터라 윤 사장의 설명에 더욱 공감이 가는 것이다.
나는 나이가 많아지기도 했지만 섬마다 연결도로가 개통됨에 따라 마음이 울적하거나 답답하면 자동차 몰고 고군산 연결도로를 한 바퀴 돈다.
바다를 보면 마음은 확 트이고 자연의 섭리에 따라 온갖 풍상을 다 겪은 크고 작은 바위 돌, 바위틈새를 비집고 자라는 소나무 한그루, 썰물 때를 찾아 갯바탕(수천수만 년을 겪으며 살아온 작은 바위와 모래, 갯벌의 광장)에서 무언가 잡고 채취하는 여인네들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 같지만 생활의 터전이라는 사실에 머리가 숙여지기도 한다.
혹한의 겨울에도, 따스한 봄에도 말이다. 삶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고군산군도는 서해바다에 우뚝 솟은 천혜의 절경이다. 내 고향 고군산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