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째보선창은 절규한다

시인/칼럼니스트 김 철 규

군산신문(1004gunsan@naver.com)2021-07-30 12:02:34 2021.07.30 12:02:34 링크 인쇄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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째보선창. 군산의 닉네임이다. 비린내 물씬 나는 동부 어판장을 끼고 시내에서 흐르는 물줄기 개천이다. 이를 가리켜 사람의 윗입술이 찢어진 언청이에 비유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누구에 의해 언제 부터인지는 아무도 정확히 모른다. 그러나 ‘째보선창’은 군산의 대명사로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개항 이전은 금암동 선창가 일대에서 포구로부터 시작된 군산항은 순수한 어항이었다. 금강하구에서 잡는 생선을 비롯, 칠산어장, 전남 신안 앞바다, 연평도, 동지나, 남지나 해역까지 가서 잡아오는 조기, 갈치, 병어 등 다양한 어종의 집결지가 군산항이다.


이곳 어판장은 조금 때면 선창가 배들은 오색의 만선 깃발을 날리는가 하면 부둣가에는 생선상자로 산더미를 이룬다. 조금의 기간에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런가 하면 부둣가는 물론, 봄부터 초가을 까지는 시가지 주점 골목이나 큰 도로변에는 술취한 어부들이 팔자 좋은 잠자리가 된다.


군산항이라는 항구가 개항되면서 동부어판장 앞에는 선박의 길잡이 빨간 등대하나가 1919년에 설치됐다. 이 등대는 단순한 선박의 등불만이 아닌 군산항의 낭만을 대변해 주기도 했다.

 군산항 등대. 이 등대와 선착장, 어판장 등 째보선창을 무대로 문인들은 시와 수필, 소설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1백여 년 수난의 역사 속에 문화예술을 꿈꾸는 군산항은 익어가고 있다.


문화예술을 머금으면서 오늘을 지켜온 군산항은 너무도 초라한 풍광의 짚 시처럼 느껴졌다. 그토록 성시를 이룬 어판장과 즐비한 주막집, 선구상회, 어선, 어구, 공장도 모두 자취를 감춰 버렸다.

 심지어는 어민을 대상으로 한 여인숙은 진적에 문이 잠겨있고 어선관련 업소들은 아예 구경조차 할 수 없는 허허벌판이다. 부둣가는 선박 폐선, 소형 화물운반선, 갈매기만이 날고 있을 뿐이다.

​지금은 북풍한설이 춤추며 날뛰는 무희의 치맛자락 바람만 날리는 형상이다. 필자는 중학교 시절 째보선창가 노부부가 운영하는 ‘고군산 여인숙’에 하숙을 하면서 째보선창다리를 하루면 몇 번씩 걸어 다니며 보낸 그 시절은 향수어린 곳이기도 하지만 꿈을 키운 자리이기도 하다.


최근 1시간여에 걸쳐 째보선창 일대를 걷는 사이 길가는 사람은 선창가를 지나는 주부 한명이 전부다. 나를 본 째보선창은 “당신은 뭐하는 사람인가, 왜 나를 이렇게 버려 둡니까”하는 항의와 절규의 쟁쟁한 목소리를 듣는 마음이 서려졌다.

​갈매기 몇 마리는 폐선 돛대에 앉아 서해를 바라보는 모습은 어민들의 먹거리 생존터가 아닌 우리들이 향연을 펼치는 보금자리임을 보여주는 거 같아 등대를 다시 한 번 더 쳐다보는 순간 가슴 뭉클했다.


군산시는 어판장에 수제맥주공장과 다른 시설물들을 유치한다는 계획아래 준비를 하고 있기는 하나 언제 실현 될지는 알 수 없으며, 그것만으로는 기대충족이 어려우리라 보여 진다.

 제대로 하려면 째보선창을 포함한 동부어판장 등 금암동 일대를 재생의 수단으로 회생시켜 낭만이 춤추는 거리를 조성해야하는 마음 간절하다.

​군산의 대명사 ‘째보선창’은 오늘도 “나를 버리지 마십시오, 어쩌자는 것입니까” 하면서 회생의 절규하는 숨찬 목소리는 등대가 있는 금강물에 호소하고 있다. 오늘밤도 등대는 희망의 안내자 불빛을 날리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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