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박사․문학 평론가 양 영식(ilminson1@hanmail.net)
문화(Culture:영․프)란 단어는 라틴어의 Cultura에서 온 것이다. <Wundt>는 Cultus라는 어휘에서 유래된 종교 행위와 토지의 경작, 파종, 수확 등의 농업행위 등 두 기능의 의미를 지닌 정신적이며 물질적인 요소라 정의한다.
이에 대해 Herbart는 <문화란 인간의 정신적 요소만을 가진 것이다>라고, Rickert는 가치를 기준으로 한 정신적 또는 물질적인 가치를 지닌 것이라면 모든 것이 ‘문화’라고 했으며 특히 정신적인 면에 방점을 두었다.
이에 더하여 Ashlay는 문화의 요소를 문학, 미술, 과학 등 철학적 요소로서 문명의 작은 한 부분이라고 주장하며, 문화 문제에서 한걸음 나아가 정신적 비중에 의미를 두며 문명의 한 부속물로서의 경향들이란 생각을 제시한다.
그러므로 문화는 한 민족과 국민 즉 인간들의 집단생활을 토대로 하고 발전한 점에서 문화의 발전 주체는 민족이나 국민이기에 민족 문화는 끊임없는 새 빛의 발휘 과정에서 진화하고 발전해 나아가는 것이라 하겠다.
이와의 관련에서 문화는 인간이 생각하고 행동하며 세상을 살아가면서 일궈낸 총체적인 창조행위의 발현들로써 삶에 보람과 행복이 결정되는 욕망과 욕구에 있어서의 문화적 의미는 참 광범위한 다의성을 지니는 것일 터라 하이리라.
이렇듯 다층적인 구조 의미에서의 문화적 고려는 인간 자신이 선택한 방법에 의해서가 아닌 선택한 행동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으로서 다층화 되면서 진화되고 변해가는 과정의 존재물의 총체적 결과물이겠다.
그런데 우리들이 문화란 명사 앞에 인간, 예술~, 등등의 수식어로서 대치하여도 문화와 인간의 관계는 끊임없이 그 생명력을 유지될 수 있음에서 그 창조적 가치는 ‘만남’ 속에서 형태를 드러내거나 잠재된 감정에 의해 발현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왜냐하면 문화의 특성은 붙잡고 행동하는 자에게서 나타는 것으로서 곧 인간이 소지하고 있는 잠재력의 발휘와 창의적인 충동에서 온 이것들이 문화적인 내적 가치가 되는 요소의 모든 것의 총화들이라 할 수 있음에서이다.
아무리 21c 정보화 시대를 살아간다 해도 우리들 인간은 완성된 영장체가 아니라 스스로 성숙을 이루어 나아가는 미완성의 존재이기에 자신의 주관적인 결정과 객관적인 정신 속 공동 제작 관계로서 새로운 <만남>의 현장 및 인간화의 변화를 통해서만이 끊임없이 이뤄지는 것일 터에서이리다.
고로 문화의 실제적 가치들인 인간 삶의 가치(도덕적, 인격적)는 행복과 기쁨을 창조하기 위한 매개의 역할이 되고 있음에서 잠시 도연명의 생활 철학인 귀거래사 중<부귀도 내 소원이 아니고 공명도 기약할 바 못되니, 오로지 자연의 조화에 따라 잠깐 살다 돌아가는 것 그 천명을 즐기며 누릴 뿐 다시 무엇을 의심 하리오.>함을~, 떠올려 보기를 권면합니다.
우리의 생활 속에서 예를 하나들면 하나의 ‘산‘은 조그만 산으로 계속 이어지어 점차 큰 산이 되고, 산과 산 사이에 동리가 형성되는 등 산세(山勢)의 유연한 <메타포>들이 실생활화로 반영됨을 살펴 본 후, 그 은유성에서 부드럽게 굽은 곡선은 언어나 동작의 곡선 적인 리듬의 자연으로서 나타나는 삶의 현상들을 이해할 수 있을 합니다.
아뿔싸, 헌데 삶의 도리 사상서인 동양 문화의 원류들 <서경>에서 광범위한 문화적 내용 중 <壽(수), 富(부), 康寧(강녕), 好修德(호수덕), 考終命(고종명)>의 방어적이고 낙천적인 세계관 溫故知新(온고지신)의 미덕을 독일의 문화 비평가 <홀츠>의 우주관 중 ‘생활의 10%는 나에게서 일어나고, 90%는 그것에 대응하는 것들에서 왔음’의 문화관을 또 기억해야 하겠고…,
지금처럼 기후변화와 환경에 눈먼 와중에서 자연과 천리에 反(반)한 탈 자연적인 세상의 획일화의 敍事(서사)적 현실의 문화적인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 이젠 동양과 서양문화(음양의 조화)가 공존하는 가운데 때론 ‘나를 비우고, 모든 것을 섬기며’ 자연 친화적인 문화, 환경과 생활의 기쁨을 누리려 하면 융합된 새 패러다임의 문화 아이콘(無爲自然: 무위자연)을 다시 정립할 시대가 왔음을 각성하고 성찰해 나가야 하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