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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에 감사>를 늘 생각하는 일상

문학박사․문학평론가 양 영식

군산신문(1004gunsan@naver.com)2022-01-07 10:52:46 2022.01.07 10:52:46 링크 인쇄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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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문학평론가 양 영식

<ilminson1@hanmail.net> 


 새해 이 아침, 인생이 뭘까에 대해 스스로 자문자답해 볼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해 보곤 한다. <인생은 길이가 아니라 값어치다.>는 말을 생각하면서, 심신을 괴롭혀온 세월을 이겨내려고 무던히도 애써 온 이 순간 인간의 신체적 조락과 작은 곤충의 생명에 대한 번뇌가 너무 크다.


 이어진 생각들 하루살이는 2년 가까이 물속에서 애벌레로 살다가 성충이 되면 입이 없어져 먹지도 못하고 공중에서 꽉 찬 군무 마친 후에, 자신의 배와 머리 꼭대기에 알이 차오면 죽는 순간까지 알을 낳는 기쁨의 종말로써 우주로 조용히 사라지는 장면을 떠올리어 보다.


 아~아! 얼마나 아름다운 순명(順命)이며 깨끗한 우주 속으로의 소멸이란 말인가. 오직 그들은 일생을 최소한 먹이가 있으면 행복하고 생의 짧음에 여의치 않으며, 생명의 신성을 얻은 행복한 걸음으로서의 생각 등 무화(無化) 혹은 무아(無我)의 ‘방하착(放下着)’ 세계를 떠올리다 보니 이 광대한 우주 속 시간성이란 무시무종(無始無終)의 세계로 이해되다.


 그러함에도 생명의 탄생과 성장 및, 소멸의 생물학적 과정은 한 백년 살아가는 인간이나 하루를 살다 죽는 하루살이나 지구의 한 축을 스쳐가는 우주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을 뿐이란 생각에 ‘내’가 존재하지 않는 ‘나’의 세계에 대한 5차원 적 사유의 흐름으로의 비현실 속의 현실로 이어지는 진공(眞空)으로써의 가득한 이 환각 속에 취하다 보니….


 이렇듯, ‘꽃의 향기는 백년을, 사람의 향기는 천년’을 이어 간다는 이 말이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기다림은 내일로 가는 신뢰의 마음으로 복기화 되면서 오늘을 다시 살아가는 게 인생의 유영(遊泳)임에서 잠시지만 ‘나’와 마주서는 시간성들 앞에서 희망과 고난, 두려움과 용기의 세계를 탐색해 보고 있으려니 또 다른 생각들에 가슴이 참 벅차다.


 아니, 그러니까 일상을 들여다보며 아무 생각도 없이 무심코 살아가는 게 인생이 아닐지 하는 생각의 중심들이 곧 사유의 의미라 함에서, 고프니 밥을 먹고, 잠이 오니 잠을 자며, 사람을 보니 마주 서 얘기를 나누는 등 마치 삶의 흐름이 자동화 되는 와중에서 타인에 대한 배려란 사념들은 새로운 삶의 다른 자기 발견인 <진아(眞我)의 세계>로서 하늘의 선물이라 하리다.


 헌데 일상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인간의 삶이란 어떤 생각을 갖느냐에 따라 인생의 가치가 정해진다고 한 <데카르트>는 ‘인간은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했음에 <생각한다는> 그 건 정녕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하는 삶의 가치를 스스로가 찾아내어야 하는 잠언이 되리이다.


 아무튼 모든 게 너무 익숙하게 돌아가니 생각하지 않고서도 일상의 삶이 문제없이 아니 당연시 되는 것으로 생각되는데, 만일 생각하는 힘이 없다면 삶을 살아 갈 수 없음의 의미가 분명하리다. 그래서 우리에겐 무슨 일이 일어나며 일의 일상적인 삶엔 또 어떤 의미가 있나 하는 물음에 진정 <생각한다는> 것에 대하여 골똘히 생각하게 되는 것이리이라.


 해서 우리들은 생각하지 않고서는 생각이 무엇인지 또는 생각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가 없음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기에 진정으로 그 의미 속엔 또 다른 큰 깨달음(진각眞覺)이 내포되리라는 일념(一念)을 또 떠올리며 또 한 걸음 물러서서 다른 생각들 즉 생각한다는 것은 의식이 없는 존재에겐 가능하지 않으리라는 그 생각들에 머문다.


 그래서 일련의 철학자들은 이걸 어떤 것을 찾아가는 과정으로서 이렇게 물으며, 이 물음에 대해 ‘의심하고, 이해하며, 상상하는 것’들이라고 함을 알 수 있겠다. 내가 무엇을 의심한다면 의심하는 나는 의심되는 대상, 주장, 사람, 속성, 어떤 문제와 사실의 실체가 되는 연유에서 내가 생각한다는 그 사실에 대한 상념에 나는 ‘너’와 ‘나’를 생각한다. 고로 ‘너와 내’가 존재하고 있음으로써 귀결되는 것일 터이리다.


 이렇듯 이러한 사념들은 나를 바로 보지 못하고 나를 떠나 떠돌아다닌 생각들 아니 가역적인 ‘내 삶’은 결국 하나의 축복이라 하겠으며, 위대한 선물이라 할 수 있음에서 <생명(生命)에 감사>하고 또 늘 감사하는 그 생각들은 참으로 중요한 것이라 하리다.


 <나와 너>를 생각한다는 것은 인간답게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깨닫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생각하지 않고서는 내 자신이 존재할 수 없음의 현실 앞에서, 우리는 새해 원단 이 순간을 바르고 의연하게 살고 있음에 또한 감사하고, 지금 우리는 어느 한 사람에게라도 작은 힘과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나기를 소망하는 이 생각에도 또한 감사를 표해야 하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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