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박사․문학평론가 양 영식
4차 산업의 시작과 더불어 메타버스의 새 별칭인 <인류의 신대륙> 이 곳에는 인류 역사이래 거대한 변화의 디지털 세상이 열리면서 현실의 대면 세상들은 비대면 메타버스 세상으로 이동되어 우리의 뇌에 인식되는 등 새로운 현실로 쉽게 재구성되어 와 닿는다.
하니까 미래에 대한 기대와 우려의 전망에서 보면 일상을 넘어선 (Beyond the every day)의미의 테크놀로지 세계는 일상의 현실 속에 깊숙이 파고들어 이제는 일상의 가상현실 세계(VR)로 인도되고 있음을 실감되고 있다 하리다.
이러한 현실은 실제와 가상 사이의 혁신적 생각으로서 머리가 꽉 메워진다. 그래도 이 새롭게 열린 신기루 같은 디지털 공간에서 현실의 <나>를 대신해 놀아 줄 또 다른 <내 자아>인 아바타가 만들어 짐은 사실 일부분에 지나지 않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세상의 모든 사물이 연결되어 있는 오늘의 현실에서 <나>라고 하는 자의식의 끝에 존재하는 의문들 예컨대 내가 없는 세상에서 ‘상실’이라는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 까 하는 상상은 순진무구한 동심 속 소년의 꿈꾸기와 같은 ‘내’ 아바타의 의식이 세상과 네트워크로 동일하게 결합된 터에서이겠다.
해서 우리의 일상으로 다가 온 metaverse (가상현실)들이 이미 현실의 세상 곁에 공존되면서 디지털 세상에 익숙해 진 세상사는 이미 스마트폰이 없는 우리의 삶이 무인도 생활과 다름없이 된 현실의 깨달음의 생활 중심은 벌써 깊이 자리 잡은 사실에 있다 하겠다.
다시 말해서 ‘나, 자신의 의식 자체가 신세계 공간에 업로드 되는 통로로 개통되는 시점의 <현실과 가상현실>이 서로 뒤얽힘에 대해 <뷰터민터 글라스>는 메타버스 세상의 증강이 사회 활동으로 이어지는 놀이의 메타버스 세상 현실이 ’나빌레라‘ 되어 허공으로 날아 현실로 줄을 서고 있는 현상의 울림이 확인됨에서이다.
이런 생각의 나래 속에 잠기다 보니, 한편으로 낮잠 속에서 나비가 된 ‘장자’가 호랑나비 꿈을 꾸는 것인가 아니면 나비가 그의 꿈을 꾸는 것인가 대한 <호접몽>의 가상과 현실이 헷갈리는 상상의 콘텐츠에서 메타 버스의 세상은 과거가 아닌 현실의 세계로 서로 서로 놀거나, 일하기 위해 모이는 플랫트 홈 즉 콘텐츠들이 ‘현재의 우리 마음’의 열린 공간을 향해 훨훨 날아가고 있음에서이다.
이렇게 디지털 시대의 거대한 파도들 메타 버스의 일상화는 가상 종합기술과 초고속 이동 통신망 및 인프라 개발의 몰입감 등으로 날개를 달며 인공지능과 big dater에 한 정보로 연결됨으로써 개인화와 맞춤화가 가능했기에, 향후 세상의 모든 서비스는 플랫트 홈에서 자동화 세상으로 더욱 더 비상해 날아갈 것이리다.
헌데 인간과 문명 그리고 자연 환경에 대한 성찰로서의 다양한 인류 보편의 가치는 인간 중심의 메타버스로 이룩될 요구가 더욱 거세어 질 것이기에 어찌 보면 우리의 삶에서 인생은 생명이 다하면 보이지 않는 영혼만 있을 뿐, 그 실존은 모천의 자궁을 통해 차용되어 태어난 한 낱의 생명체임에서 내가 없는 세상을 남겨 놓고 떠날 수밖에 없음의 상상들 곧 인간의 오만에서 찾아야 하리다.
그러나 실제의 삶 공간에서의 의식은 변화무쌍하고 무한한 가변적 상상들로 가득하지만 인간은 지연의 일부에 속해 연결된 한 낱 작은 존재라 하기에 실제와 현실 사이에서 <디지털 표준>의 한계 또한 인간 중심으로 이루어짐을 자연스럽게 받아 들여야 할 것이다.
왜, 초자연적이고 직관적인 인간의 상상들이 시시각각 현실과 가상의 모호한 꿈과 생시의 경계를 넘나들며 미래를 예측할 과학적 사유(思惟)로의 극대화로 인해 그 다양성은 기존의 예술 세계를 넘어 또는 다른 가상의 창(테크놀로지)으로 변동되며 진화로 이어 질 것이란 점에서 똑 바른 삶의 목표를 세워 담아 낼 콘텐츠는 너무 중요하다.
따라서 인간의 삶에 질적 향상은 ‘나빌레라’로 비상되어 ‘회로애락’의 세상을 그리는 등 마음을 다스릴 지혜와 능력으로서 메타버스의 세계는 색다른 경험의 기술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한 현실을 벗어나 또 다른 <이상향(理想鄕)-가상세계>를 향해 응전하는 ‘존재자’로서의 빛남은 <나빌레라>로 영속화되며 확산될 것이라 하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