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신문사는 2023년 1월 9일자부터 김철규 전 전라북도 의회 의장(시인/수필가/ 칼럼니스트)의 인생여정과 함께 체험하고 바라본 사회상을 매주 1회씩 50회 싣기로 했습니다.
김 의장은 언론인 30년, 정치인 20년, 문단생활 37년을 통한 지역의 언론, 정치, 사회 등 다양한 분야를 생동감 있는 시각으로 재조명을 하게 됐습니다.
새해에는 애독자 여러분들에게 더욱 보고 싶은 군산신문이 되도록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1회 도전정신 강한 섬 소년>
인생은 바람 앞의 호롱불과 같다. 예컨대 풍전등화. 풍속(風速)에 따라 생명선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그러한 인생살이의 신념아래 살아오고 있다. 어쩌면 인생철학이다.
태어난 곳은 군산시 옥도면 야미도 섬이다. 야미도는 서해의 고도인 쪼각섬이다.
그렇게 어렵지 않은 아버지 김동순과 어머니 임정환 사이에 4남 2녀 중 장남으로 1940년 9월26일(음력) 태어났다.
유아시절은 어떻게 자랐는지 기억에 담을 수 없는 일인지라 코흘리개시절을 더듬어 보면 개구쟁이는 아니었던 것으로 생각이 난다.
다만 추운 겨울에도 동네 형들을 따라 갯 바탕(썰물에 나타나는 해변)에 가서 조개, 낙지 등 채취해오면 어머니가 만들어주어 맛있게 먹는 등 섬 어린이들의 전형적인 놀이로 새겨진다.
그러나 친구들끼리 싸움이 벌어지면 의례히 약자 편에서 덤벼드는 성격이다. 그 성격은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것도 무조건이 아닌 잘했는데도 잘못했다며 덤벼드는 것은 용납이 안 되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한 가지가 있다. 10대 소년시절의 얘기다.
섬에서는 음력 정월보름날이면 일도 아홉 번, 밥도 아홉 번 먹어야 한다며 친구들이 뭉쳐서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보름팥밥을 아홉 집을 다니면서 먹은 기억이 새로워진다.
세시풍속도이지만 지금은 어림도 없는 일로 여겨진다.
세상은 그만큼 각박해진 세태의 변화로 볼 수밖에 없는 일이다.
또 한 가지는 6-7살 무렵 동네 해변가 3m가량 높이의 뾰족한 바위에 “누가 올라가겠느냐”는 형들의 말에 따라 “내가 올라가겠다”며 올라가 장난 끝에 아래로 떨어졌다.
이마와 오른쪽 볼에 상처를 입어 집에 돌아와 어머니로부터 엄청난 꾸지람을 들었다.
그 당시의 상처흔적은 지금도 남아있다. 당시만 해도 섬에서 특별한 약이 없어 된장 바르며 겨우 상처를 아물게 했다.
생각해 보면 도전정신의 발로가 아닌가 싶다. 실제 나는 도전정신이 비교적 강한 편이다.
야미도는 고군산군도의 하나이며 군산에서는 해로(海路) 백리길이지만 군산에서는 가까운 섬이다.
그러나 일제치하의 고군산군도는 유일하게 장자도에 초등학교 하나가 있을 뿐이다. 다른 섬 소년들은 장자도로 유학을 가야만 비로소 국민학교를 다닐 수 있는 형편이다.
야미도에서는 우리집안에서 김일순 당숙한분이 장자도에 유학을 하여 고 김길준 시장(전 국회의원)과 1.2등을 겨루었다고 한다.
고군산군도 대부분의 섬 주민들은 한글보다는 한학을 배우는 실정이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