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회 6.8 부정선거와 환표사건
1967년 6월 8일 제7대 국회의원 선거는 신민당 후보 김판술, 민주공화당 차형근 후보, 대중당 김재문 세 후보와의 대결로 선거를 치른다.
민주공화당 당원들은 3,355명이 짝을 지어 투표장에는 이들의 총총걸음이지만, 속마음을 알 수 없는 투표행렬이다. 기세등등한 민주공화당원들의 모습에서 살벌한 선거 분위기를 엿볼 수 있었다.
투표시간이 마감되고 투표함 수송이 시작된다. 개표장소는 군산초등학교 강당이다.
각 투표소 투표함은 투표구 선거관리위원들의 봉함 확인도장을 날인한 뒤, 경찰관의 호송을 받으면서 개표장소로 속속 들어온다.
군산시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의 개표선언이 되자 주로 각 급 학교 교사와 행정요원들로 구성된 개표종사원들은 개표작업을 시작한다.
선거과정에서 민주공화당이 밀가루, 고무신 등을 뿌리는 선거운동을 전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신민당원들은 이는 확실한 부정선거라며 규탄을 하는 선거운동이 전개되었다는 점에서 개표결과에 대한 관심은 더욱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개표과정을 살펴보는 각 당 당원들은 불꽃 튀는 눈초리로 집계에 집중하고 있다. 김재문 후보는 어쩌다 한 표씩이지만, 김판술 후보와 차형근 후보는 엎치락뒤치락하는 시소게임을 벌이고 있다. 양 당 당원들은 몇 십 표만 올라가도 함성과 함께 박수 소리가 요란하다.
시간은 자정을 넘어간다. 그러나 섬 지역 투표함 수송이 뱃길거리와 수송선박 사정에 따라 도착시간이 항로별로 달라 개표가 맨 나중이다. 이로 인해 한 표 한 표에 더욱 신경이 쓰이는 대목이다. 드디어 새벽녘에서야 개표가 종료됐다.
총 선거인수 12만5,394명에 투표수는 9만4,421표 중 차형근 후보 4만2,640표로 1위(변호사), 김판술 후보 4만748표로 2위(전 보사부장관), 김재문 후보 1,650표로 3위(무직)로 나타났다.
문제는 차형근 후보와 김판술 후보와의 차이가 1,892표 차로 나타나자 예측수와 너무도 근소한 차이를 보였다.
신민당원들의 투표함 수송의 문제점, 유령유권자 조작과 도서지역의 참관인 거부 등의 의혹에 강력한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나 이날 개표결과에 대해 신민당원들의 항의와 주장에 대한 의혹은 뒤로하고 선거관리위원회는 일단 차형근 후보를 당선자로 최종 결정, 선언하고 당선증을 교부했다. 분명 부정선거로 단정할 수 있는 6.8 선거였다.
신민당은 이러한 내용을 담은 부정선거의 유형과 실태에 대해서 1967년 8월 10일 자로『6.8부정선거백서』를 발행했다. 유형과 실태는 별도로 다루기로 한다.
당시 투표함수송을 보면 호송정복경찰관 2명과 사복형사 2명이 지켜보고 있다. 그런데도 환표가 가능한 것은 공화당 정권의 부정선거 획책의 결과였으며, 이는 부정선거가 어느 정도인지의 단면을 볼 수 있다.
개표현장을 지켜본 백효기 여사를 포함한 당직자들은 물론, 이를 지켜본 신민당원들은 부정선거를 외치며 개표장은 항의시위로 소란이 크게 일었다.
개표장 상황을 보고받은 김판술 선생은 부정선거로 규정하고 투표함 보전신청과 함께 당선무효, 선거무효, 유령유권자 등 선거법 위반으로 소송을 제기하기로 했다.
급선무는 투표함 보전신청에 따라 서울 법원에 투표함 수송이 문제였다. 다음날 투표함 호송책임당원이 있어야 하는데도 호송하겠다는 당직자가 한명도 없다. 이에 김판술 후보는 선거패배의 쓰라림을 겪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