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회 전두환 정권, 1도 1사주의 언론탄압
1980년 전국 신문, 방송, 통신 등은 신군부의 언론통폐합으로 지방지도 1도 1사주의가 시행된다.
전두환이 신군부에 의해 이해 11월14일 한국신문협회와 방송협회는 강압에 못 이겨 임시총회를 열고 신문, 방송, 통신의 통폐합과 방송의 공영체제화로 한다는 의결를 하게 된다.
이 의결에 따라 전라북도는 당시 전북일보, 전북매일신문, 군산 호남일보 등 3개 일간지가 있으나 전북일보에서 흡수통합을 하게 된다.
이로 인해 전북일보는 전북신문으로 제호를 바꾸어 발행하게 되며 임원개편을 단행 한다. 결국 전북매일신문과 군산 호남일보는 자동적으로 없어지고 전북일보 하나만 남는 셈이 됐다.
전북신문으로 제호가 바뀌면서 서정상 대표이사 사장은 회장(사주이면서도 실권을 상실한 상태)으로 자리를 옮기고 새로운 대표이사 사장은 중앙정보부에서 추천한 이형년(전 동아일보 기자), 주필은 문동리(전북매일 편집국장), 편집국장은 이호선(서해방송 보도국장)으로 임용된다.
전북일보 편집국장 신현근은 논설실로 자리를 옮긴다. 편집국 진용은 이호선 편집국장 체제로 바뀐다.
3사 통합에 의한 편집국은 3사 출신 기자들이 1백여 명에 이르나 기자라는 신분의 동질성은 같지만 한 식구가 되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이러는 과정에서 편집국 기자들은 이형년 사장이 중앙정보부에서 추천한 사람이라는 데서 오는 기자들의 특유의 성향은 보이지 않는 가운데 반발의식이 표출되기 시작한다.
따라서 신현근 편집국장을 밀어내고 편집국장자리를 꿰찬 이호선 편집국장은 좌 불안인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 역역했다. 연말이 가까워지는 어느날 긴급 편집국 회의를 소집한다.
내용은 편집국 직원 모두는 이형년 사장 영입에 찬반 서명을 받은바 1백% 찬성을 하는 만큼 취재에 열심히 하라는 것이다.
나는 손을 들고 “찬성 서명한 사실이 없는데 어찌 1배%라고 합니까”라고 했다.
그러자 7-8명이 너도 나도 하며 서명한 사실이 없다는 것이다. 이에 당황한 이호선 편집국장은 “1백%는 아니고 대충 그렇다는 말이다” 라며 잘못된 수치에 대해서는 양해를 해달라는 것이다.
그런데 12월31일 종무식이 끝나자마자 이호선 편집국장이 김철규 하고 부르는 것이다. 다름 아닌 신년 1월3일자로 교정부로 발령이 났으니 그렇게 알라는 통보다.
나는 당시 사건기자 총책임을 맡은 경찰 캡이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했으나 곧바로 이형년 사장 찬반 서명 건에 처음 반발했다는 괘씸죄이구나 하고 두말없이 수용했다.
이는 엄청난 좌천이며 교정부 기자로 입사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서정상 사주는 이형년 대표이사에 대해 업무정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제출, 소송을 진행 중이다.
도시락을 싸오는 기자는 아무도 없으나 오직 나 혼자만이 도시락을 가져와 먹기 시작했다.
이에 도시락을 가져오는 내근 기자들도 한명 두 명씩 늘기 시작하더니 한 달여 지나는 동안 내근 거의가 도시락 지참이다.
이호선 편집국장은 “김철규 이놈 무언의 시위를 하는구나한다“는 얘기를 간접적으로 들었다. 그러나 나는 그에 개의치 않고 가처분 신청에 기대를 갖고 법원에서 인용만 된다면 즉각 원상회복이 될 것이라는 희망적인 생각을 했다.
기다리던 가처분 신청의 인용으로 서정상 박사는 대표이사 사장, 편집국장에 신현근, 김철규 경찰 책임기자로 원상회복이 되면서 도시락점심을 면했는가 하면 정의와 진실은 살아있다는 입증이 됐다는 데서 흐뭇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형년은 전주를 떠나고 이호선 편집국장은 신문사를 떠나는 상황에 이르렀다.
전두환의 언론통폐합은 민주화에 밀려 사라지고 현재 우리나라는 언론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그 후 전북신문은 전북일보로 제호를 바꿨다.
그러나 2022년 윤석열 정권이 들어서면서는 보수언론을 제외하고는 진보성향, 공영방송에 대해서는 보이지 않는 탄압을 시도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언론은 역사의 사명을 생명으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