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회 사회부장의 애환
신문사에서 사회부장은 예리한 판단력이 생명력이다. 사회부장은 정치, 경제, 문화 등 특정분야를 제외한 일상적 사회의 모든 분야를 취재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부장은 그만큼 취재영역이 넓어 다른 부서와는 다르다.
그런데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의 시해사건이 발생하자 1980년 11월 전두환 체제의 신군부가 탄생하면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에는 언론장악을 위해 신문, 방송, 통신 등 모든 매체 통폐합을 한다.
사주와 경영자들로부터 통폐합에 따른 지시각서를 받아 지방신문사의 경우는 1도1사 주의에 따르도록 했다. 이로 인해 전북은 전북일보, 전부매일신문, 호남일보 3사가 제호를 전북신문으로 하고 통폐합한다.
이는 언론역사의 치욕을 기록하는 순간이다.
통폐합 후 3년이 지나면서 사회부장이 된다. 나로서는 막중한 책임감이 따랐다.
전북에는 신문이 하나밖에 없어 흰 것도 검다면 검은 것이 되고 검은 것도 희다면 흰 것이 되는 상황이다.
특히 군 검열단의 사전검열을 받게 된다.
이에 앞서 데스크는 사건사고의 사실 확인이다. 그는 기사 한줄, 한 문장의 표현, 사실여부 등이 따르고 있어 부장으로서의 책임은 물론, 신문의 공신력과 회사에 미치는 영향은 엄청날 수 있기 때문이다. 편집국내의 각부서 기자수도 사회부가 가장 많을뿐더러 다른 부서 기자들과는 취재자체가 조금은 다르다.
취재 대상이 그만큼 다양성이 있고 취재기자의 성향과 취재내용에 따라 기사가 되기도 하고 기사로서의 가치가 없을 수도 있어 취재기자의 판단과 분석을 요구하는 영역이 사회부기자들이다.
사회부장은 사건사고는 물론, 우리들 일상적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를 일선 취재기자들과 토론을 하며 문제점을 찾아 집중취재를 통해 신문의 기능과 사명을 다하는 사회적 역할을 해야 한다.
내 경우는 일선 취재기자를 못 믿어서가 아니라 혹은 취재가 덜되었거나 취재방향이 잘못될 수도 있어 직접 확인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럴 때면 취재대상의 사안에 따라 다양한 설명을 해주어 더욱 진지한 취재를 하여 보도하도록 한다.
그런가 하면 특정단체나 특정인에 대한 명분 없는 기사를 제출하면 첫 리드만 보아도 알 수 있기에 이유 없이 찢어서 휴지통에 버린다.
부원들끼리 술자리가 마련되면 호랑이 같은 김철규 부장은 다른 부장으로 언제나 갈까하는 불평을 한다는 소리를 듣기도 하지만 나는 명분 없는 기사를 또 써서 제출하면 또 찢어서 휴지통에 버린다.
그러한 성격을 안 뒤에는 명분 없는 기사는 아예 기사를 쓰지 않거나 만약 쓰게 되면 사전에 부득이한 사정을 말하면 기꺼이 채택을 하는 경우는 있으나 쉽지 않은 일이다.
기자들과의 갈등은 있을 수 없기에 때로는 고민을 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사회부장 윗선에서나 외부의 압박이 오는 경우도 있다. 커다란 사건이나 사고가 발생하면 기사를 아예 빼주거나 축소보도를 해달라는 요청이 오면 데스크를 보는 나로서는 갈등과 고민이 생긴다. 참으로 어려운 문제다.
한번은 전주 신역 앞에 건설 중인 5층 건물이 공사 도중 폭삭 주저앉는 붕괴사건이 발생했다. 윗선으로부터 기사를 “빼주면 어떻겠느냐”는 의견에 “인명피해는 없지만 대형건물의 붕괴사건이라 절대 뺄 수가 없습니다”고 했다.
윗선에게 3번을 불려갔다. 결국 이날 사회면 탑 기사를 맨 하단에 1단기사로 처리를 하면서 본문 기사는 한줄 도 줄이지 않고 처음 작성해온 대로 전부 소화를 한 일이 있다.
신문윤리강령과 사회적 정의를 위해 사회부장직을 걸고 보도를 한 것이다. 그 뒤로 조금은 불편한 점이 없지는 않았으나 그를 감내하며 자리를 지켰다. 그래서 인지는 몰라도 전북일보 역사상 5년이란 최장수 사회부장을 기록했다.
대개는 2년이면 보직을 바꾸어 준다. 5년의 사회부장을 지낸 역사는 내 인생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