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회 학창(學創) 이종록(李鍾祿)선생 2
학창 이종록 선생은 평생 창조적 교육론을 후진 양성에 전하고자 하는 일념으로 우리나라 교육에 커다란 족적을 남기신 교육가다.
2001년 5월에 발행한 ‘창조교육 사상’ 기념 집에서 밝힌 내용 중 ‘창조교육 55년을 회고하며’와, 특강 내용을 살펴보면 ‘해방의 기쁨과 건국의 과제와 소망을 가지고 시작한 일이 교육이었다’고 첫 머리에서 밝혔다.
군산중학교(6년제) 교사로 재직하면서 학생들에게 제시한 명제는 ‘너의 인격과 나라와 가치를 창조하라’였으며, 이는 인간의 본성은 창조성이라는 철학적 각성임을 설파한 것이다.
인간은 지고한 창조성을 갖고 태어났으며 주어진 역사적 바탕이 된 것은 창조적 인간교육의 이념임을 강조했다.
무한한 도전과 창조, 즉 시대의 상황에 도전하고 주어진 소명의식으로 창조하면서 인간의 창조성은 발휘되어진다.
지금 팔순(耋壽)의 나이가 되기까지 일관하여 창조적 인간교육에 의지를 갖고 교육자로서 교육행정가, 육영사업가로 살아오는 동안 55년의 세월이 아직도 할 일이 많다고 느껴지는 것은 민족과 시대의 부름이 나로 하여금 끊임없는 도전정신을 갖게 하기 때문이라고 술회한다.
선생은 식민지의 조국에서 식민의 민족으로 태어나 유년시절부터 선친으로 하여금 빼앗긴 조국을 반드시 되찾아 떳떳한 국가를 가진 백성으로 살아야 남아의 기개를 펼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토록 조국 광복과 더불어 자주 독립국가를 갖는 조국 대한민국의 가치를 강조한 것이다. 1945년 조국 광복으로 외부의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 군산에 돌아오자 군산중학교 교사로 후진 양성에 노력해달라는 강력한 요청에 따라 이를 수락하고 교사로 임명을 받는다.
학창 선생은 첫 교단에서 학생들에게 ‘교육의 목표는 창조교육에 있다’고 교육의 이념을 제시한다. “내가 교단에 선 것은 여러분과 나와 국가를 새롭게 창조하기 위한 것이다.
첫째도 창조, 둘째도 창조, 셋째도 창조이다”. 이때부터 교육자로서의 생활은 시작되었고 그리스도의 사랑과 지난날의 경험에서 얻은 도전과 시련의 극복정신을 교육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정열을 학생과 학교에 바쳤다. 이러한 창조적 교육을 더욱 발전적으로 내다보고 서울대학교 철학과 교육학전공에 입학한다.
우리나라 석학들인 박종홍, 안호상, 김두헌 교수의 지도를 받으면서 교육적 신념인 창조적 교육의 이론적 토대를 닦았다.
1947년에는 서울대학교 대학원에 진학, 교육학과 교육사상을 연구, 인간의 창조적 본성이 교육적인 자아에 있음을 구명(究明) 함과 동시 교육은 인간학의 근본으로 해야 하며 본질은 창조성에 있음을 발견하고 창조교육이 최우선 과제임을 이론적으로 정립을 했다는 설명이다.
학창 선생은 돌이켜 보면 국가 없는 식민지 민족으로 태어난 설움을 갖고 조국의 미래와 민족의 영광을 위해 웅지를 세운 지 10여 년, 그리고 광복된 조국에서 국가를 위한 공직자로서 교육을 위한 실천과 이론가로서 55년(2001년 창조교육사상 편집 기준연도)을 오직 창조교육의 일념으로 살아오고 있음의 회고담이다.
‘변화하는 역사를 무시하는 존재는 있을 수 없는 것’이라며 역사의 엄중함을 역설한다. 창조교육의 인간의 정신과 의지의 활동이 있는 곳에 역사가 있고 역사는 인간에게 무한한 과제를 제시하며 새로운 역사를 창조한다.
문제의식을 갖고 살아왔으며 문제해결의 의지와 문제해결 활동을 해온 만큼 이것이 곧 창조적 인간교육으로 귀결된 한 시대의 역사창조의 바탕이 되었음을 자부한다는 내용으로 결론을 내린다.
학창 이종록 선생은 군산이 낳으신 우리나라 창조역사학자로서만이 아닌 청소년들에게 철학이 담긴 인생의 길잡이 역할을 해내신 한 시대의 선생님이시다. 나와의 인연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