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박사‧문학평론가‧시인 양 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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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자연 과학은 절대적이거나 영구불변의 진리가 아닌 하나의 패러다임으로 ‘어떤 과학자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믿음, 가치, 기술과 능력 등을 망라한 총체적인 집합의 의미로서 자연 또는 자연이 창조한 연구 영역으로서 과학과 인간은 공존해야 할 대상이리다.
헌데 인문학은 인간다운 삶을 회복하게 하는 인간문화 분야로서 역사, 언어, 문학, 철학 등을 더 상세하게 설명하면 감정이나 의지에 상대하여 감각, 직관, 오성 등 지적 작용의 높은 정신작용에서 창조된 이성적인 사고와 판단을 이루는 통합적인 의미의 고등 사고 기능이다.
따라서 과학 이론을 통해 설명할 수 있는 대상은 우주 전체의 절대적인 감각이 아닌 인간적인 감각임에서 ‘인간은, 인간이 아닌 것들 없이, 인간일 수 없음’의 서사(敍事)성에서 인간의 삶에 중요하고 필요한 인문학을 통해 ‘사랑과 합일’의 융합된 삶을 지향해야 할 것이리다.
허나 우리가 만나는 감각 중, 눈에 보이는 자리, 명예, 돈 등은 일상생활에서 매력적이나 삶의 본질이 아니라는 점에서 인간의 더 나은 삶을 위하여 잃어버린 감각을 일깨우는 인문학은 디지털 이용 가능성의 격차로 이어지는 아날로그로의 접근성 격차들이 더 중요해질 수 있음을 알 수 있게 되리라.
다시 말해서 이와 같은 것들은 순간적으론 자기 존재감을 드러내긴 하지만 내외적 현상이 잠시 동일시화 되다가 이것들이 사라지고 떠나버리면 초라해지고, 위축된 모습과 고통에서 견딜 수 없게 됨에서 마음을 황금빛으로 채워줄 인문학의 섭리에서 못 벗어나면 삶은 피폐해짐이 자명할 터에서다.
그래서 이 문제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가운데에 ‘인간’ 실체의 본질에 관한 합리적인 탐구로써 우리는 자연과 아니 타자와 함께해야 해야 할 철리(哲理)를 인간의 삶에서 구현해 내려는 일체 속에 공존할 지혜로 채워내야 함을 의미함에서이다.
위와의 관계에서 Kant의 <인간학>에 대해서 잠시 살펴보면, 생리적 인간학과 실천적 인간학으로 분류한 전자에선 자연이 인간을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그리고 또 후자에선 인간이 자기 자신을 어떻게 형성하는가 한 그 연구 영역에 대해 밝혀짐을 느낄 때이겠다.
이의 혜안에서 본, 울림들 즉 형이상학적인 형태를 떠나 <지(知), 정(情), 의(意)>를 갖춘 인간 존재로서 파악할 수도 있기에, 우주라는 가없는 섭리 현상들 즉, 흔들리지 않는 삶의 기본(인간과 자연의 일체) 축(軸)에서 인간의 삶을 더욱 잘 지켜내야 함으로써 이해되어야 할 것이리다.
이 인간학과의 고려에서 인생과 존재의 본질을 탐색하고 연구하는 학문의 인문학은 동서양을 불문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통한 인간다운 삶을 이어갈 수 있는 근원의 문제들 즉 인간 내면의 탐구와 존재의 본질 연구를 위한 광의의 인간학과 자연 과학이 연계된 개념으로써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러함에서도 우리가 놓쳤을 숱한 이야기 중 인간 중심에서 특히 <자아>라고 하는 ‘존재와 인생’을 깊이 생각해 보고, 순간의 위기와 변화 국면 위에 존재하는 존귀한 생명과의 연결체로써 인문학의 정체성은 <실재의 본질>에 관한 합리적 탐구가 목적이며, 과거의 실제와 실제의 본질로서의 ‘선견력(先見力)’ 또는 ‘통찰력’에 의한 연구 영역들이 되겠다.
그러니까 인간이 지닌 고등 사고 기능들 이를테면 추론, 판단, 비교, 적용 등의 단순한 과제를 넘어서는 요소 기능 사고로서 그 기능들이 복합적으로 적용되는 인문학(humanities)이란 일생을 통해서 비판적이고 사변적인 학문의 영역 범주에서 수렴적 사고 기능이 아닌 확산적 사고 과정에서 나타나는 영역이라 하겠다.
그렇지만 신념을 강화할 증거를 찾기 위한 인간 연구에 대한 현실과 배움의 소통 공간 속에 공존하는 지식의 형성 과정에서 본, 오늘의 세계는 너무 쉽고 빠른 가속(加速)의 시대성으로서 인문학의 필요성이 절실한 터에, 인문학에 대한 천착을 더 치열하게 지속해 나아간다면 인간의 미래 사회는 많은 발전의 시원(始原)을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