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평등의 요체는 ‘소통과 존중’을 통한 기회의 균등이며, 성 평등의 문제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요구로서 불이익을 주는 것의 차별뿐 아니라, 저출산과 저성장의 극복을 타개하기 위함이고 유연한 일자리를 증대시켜야 함에서이라 하리라.
국가가 7월 첫 주를 양성평등 구간으로 제정하며 정부, 기업, 가정에서 불평등, 불합리한 제도를 바꿔야 함이 화두이자 대세로써 클로디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의 지론인 ‘일과 가정의 양립이 가능한 균형된 사회 건설’을 요구함에서 알 수 있다.
사실 인간은 건강한 자유 속에서 좋은 자아실현의 방법이 선택될 수 있음에서 본 영국의 페미니스트 작가 로라 베이츠는 아직도 성 차별 문제가 개선되지 못했음을 거론하며 누구나 자유를 누릴 선택을 통해 부당한 차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부당한 차별이 지양되어야 함에서 보면 ‘여기자, 여검사, 여교수’ 등 호칭의 통념적 문제는 성 소수자로서의 차별에서 또한 여성 피해자가 성폭행 사실을 고백했을 때 먼저 여자가 ‘조신(操身)하게 굴었어야지’ 하는 핀잔이 먼저 돌아오는 악순환의 고리부터 끊어야 하리다.
그러니까 지금까지의 이분법적인 사고를 넘어 이해와 교육은 아주 중요하기에 ‘돌봄’의 외주화로 자녀를 갖지 않으려는 경향성 등은 출산 단절 및 처우의 악화 및 학습효과에 따를 무자녀 결심의 육아 문제란 부부 공동 몫이라는 인식의 전환과 함께 극단적인 사고(just enjoy, no kids=egoism)체계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리다.
그러나 세계사적 현실은 능력보다는 성 소수자인 여성의 외모에 집중하며, 심지어 언론까지 국경을 초월한 성 차별 사례들인 한 여성 정치인의 성 차별로써 고착되는 현실을 법률적 강제 수단으로써 해결할 문제가 아님에서 우리는 아래의 내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문명의 변혁기에서 철학의 거대한 물음들인 훈고(訓詁)의 틀에서 벗어나 시대의 도전에 과감하게 응전할 때이기에 철학자 시몬느 보브와르의 명언인 남녀 간엔 ‘영원한 오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서로 다른 이념(남= anima: 상향적 힘–陽, 여=animus:하향적 힘-陰)에 대한 <상생>의 믿음과 철학적인 근본을 성찰할 필요가 있겠다.
또 한 편으론 ‘정의’에 배치되는 문화들 즉 여성에게 과도한 육아 부담을 지우는 사회적 구조를 해결하기 이전에 기후 위기 변화와 여성의 출산 문제가 시급한 점에서 미래 세대를 길러내는 일이 꼭 여성만이 아닌 사회 전체가 함께 책임지어야 할 생존의 과제로서의 인식의 전환이라 하겠다.
따라서 타고난 능력과 좋은 기회를 이용하여 일상의 작은 불합리를 깰 <성 평등>의 본질들을 인간의 가치문제와 연결해 서로 지켜주고 배려하는 마음으로써 사랑의 혼을 이어가는 자유인이 될 때, 진정한 성 평등은 가능하리란 생각은 물론 진정한 남녀평등사회는 이루어지리라고 생각하는 바이다.
그러므로 양성평등 문제의 균형 개선을 위해선 먼저 세상과 내가 동시에 달라지어야 한다는 사실들로써 관계를 유지하면서 살아갈 남녀는 서로 배려함으로써 의견 차이가 상쇄됨은 물론 ‘성 철학’의 기조를 바꾸어야 함이 제일이 되겠으며, 여성과 가족을 위한 노동시장의 대대적인 개혁은 저출산 문제에서 탈피할 양성평등의 옳은 해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