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박사·문학평론가·시인 양 영식
자신을 돌아볼 틈도 없이 바쁜 몸을 지속해내려는 현대인들은 그렇게 wellness의 시간과 공간을 지향해 살아가려 한다지만, 이상기온의 북태평양과 티베트의 이중 고기압이 온 나라를 뒤덮어 찜통더위로 열대야가 기승을 부릴 것이라는 기상 예보에 무더위로 휴가를 떠날 준비를 세운다.
무더운 일상에서 wellness 시간과 공간을 찾아 산속이나 바닷가로 또는 해외로 휴가를 떠나거나, 시원한 계곡에 발을 담그고 가족과 함께 맑고 시원한 바람이 스민 곳에서 정겨운 정담들로, 또는 책보다 더 아름다운 휴가길을 대신할 수 없으리라는 생각을 떠올리어 보기도 하리라.
암튼 휴가 계획을 세웠으니, 기쁜 마음으로 몸과 마음을 새롭게 충전할 시간을 갖추어야 할 터에 스트레스 지수가 떨어지지 않는 원인을 행복한 마음으로 세상을 받아들이며, 본성을 찾으려 노력하고 번뇌가 없이 고요해 청정한 마음에서 자유롭고 밝으며 지혜로운 삶을 누릴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이때, 삶의 현장에서 고통받는 분들에게 꼭 묻고 싶은 질문이 하나가 있으니, 당신은 진정 어떤 휴가를 보내려고 하십니까? 하고 묻게 됨은 삶에 있어서 휴가(쉼은)란 더없이 소중한 기계적인 삶과 생활에서 얻는 큰 선물이 됨에서이다.
그리곤 ‘존재는 본질에 앞선다는’ 부조리의 극치인 알베르 까뮈 작 ‘이방인’을 읽는 것으로 휴가 계획을 메꾸어 보려 한 뜻에서 편, 이방인의 첫 페이지에, <오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어쩌면 어제였는지 모른다. 양로원으로부터 전보가 온 것이다. 모친 사망, 명일 장례식.> 이처럼 본인을 낳아 준 어머님이 사망했다는 소식에도 뫼르소의 표정은 심드렁하며 자연 속에서 만난 역사적 존재에 서 있음을 느끼는 것이었다.
요는 고향으로 가는 버스에서도 뫼르소의 얼굴에는 어떤 슬픔의 흔적도 느끼지 못하다. 주인공 <뫼르소>는 좀처럼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그는 어머니의 죽음에도 여인과 사랑할 때조차도 좀체 기분을 드러내지 않는 인물로 사람은 스스로가 만드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주인공이다.
마침내 이글거리는 태양의 강렬함에 취해 한 아랍인을 총으로 살해한다. 사형선고를 받은 때조차 그는 반성이라는 걸 모른다. 소설 ‘이방인’은 세상이 모순과 불확실성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 통찰로서 목적을 찾아 나선 후, 합리적인 인간은 좌절할 수밖에 없음을 안 ‘그는 자신을 이방인으로의 소외감이 구토될 지경까지 이르며 타자로부터 단절될 만을 인지한다.’
그렇다. Albert Camus 그는 부조리한 의무를 통해 세계의 작동 방식을 작가적 상상력으로 구현된 작품을 펴내 보이면서 모순으로 움직이는 세상을 그린 이 소설의 핵심인 반항의 요소들은 ‘원하든 않든 우린 시대의 범선에 타고 있기에 제 몫의 노를 저어야 함을’ 오직 제시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현실과 비현실, 실제와 가상> 사이에서 부조리와 반항이란 근본적 성격은 인간세계의 존재 자체를 모순으로 보게 된다는 서사로서 모순의 기본은 곧 죽음에 대한 ‘절망과 삶의 환희’, ‘고독과 사랑’, ‘선과 악’이라 할 수 있기에 상징적으론 ‘암흑과 광명’, ‘질병과 건강’, ‘겨울과 여름’, ‘얼음과 불’ 등으로서 불명확한 본성에 도덕적 가치를 강요하는 시도 사이의 이율배반적인 것들이라 할 수 있다.
고로 ‘모순’은 부조리하며, 인간 조건이라는 존엄 앞에 졸고 있는 의식들로서 기계적이고 무의미한 동작이 계속되는 메커니즘과 무의미들이 직면케 됨에서 한여름의 휴가를 새롭게 디자인해 보려 한 이해와 자각에서부터 이방인을 읽기 시작하였다.
<이방인>을 통해 잠깐 엿볼 수 있었던 초월적 존재인 까뮈 그가 젊은 나이로 변사한 그에 의지들 즉 ‘부조리’한 세상사로 가득한 시대의 느낌에선 사실 ‘나’라고 하는 의식 혹은 <자아>의 실체도 <환상이자 허구>일 수 있다는 동질성의 메타포 그 의미에 대한 심오한 각성으로 꿈틀거린 주인공의 숨소리가 이 여름을 딛고 가을을 향하며 반복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