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10월 10일 오후,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 인근 해상에서 여객선이 침몰했다. 과적과 무리한 출항, 292명이 익사했다.
그 당시 우리는 해안에 투입되어 파도에 떠밀려 있는 피해자의 흔적을 찾아다녔다. 파도도 멈 춘 바다에서 수평선에 걸린 기운 배가 상어의 아가리처럼 보였다.
그 끔찍한 장면은 시도 때도 없이 재생되었다. 그때 불려 나온 게 ‘누’(Wildebeest)였다. 누의 ‘집단 익사’를 소재로 모 소식지에 기고를 했다. 인간 탐욕을 누의 중단없는 질주에 빗댔었다.
2026년 정월, 문득 1993년 ‘누’가 자꾸 기억을 자극했다. 지난 1년의 정치적 내란으로 퇴적된, 지역 정치의 혼탁으로 마비된, 그 격랑에서 비늘처럼 떨어진 기억이 다시 ‘누’였다니.
두통이 왔다. 누의 자료를 찾고 또 찾았다. 비로소 알았다. 누의 생태를 자의적으로 왜곡했다는 사실을.
왜 그때의 누의 죽음을 ‘집단 자살’로 단정해버렸을까. 제동장치 없는 현실을 상징적으로 드러낼 욕심때문에 ‘누’의 단면만을 부각했던 것이다.
그때는 몰랐다. 그들의 사체가 자연의 양분이고 그 생태가 아프리카 생태계의 교과서라는 사실을.
발굽 ‘향기샘’에서 나오는 냄새를 따라 무작정 달리는 것은 포식자를 선제적으로 압도하려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것을.
그러니 ‘죽음의 질주’라느니 ‘파괴적 행위’라느니 하는 왜곡된 해석으로 무지에 무지를 덧대버렸다.
‘누’는 탄자니아 세렝게티와 케냐 마사이마라 사이를 일주하는 대형 영양이다. 소를 닮은 ‘뿔말’로 불린다.
옆으로 굽어 위로 향하는 뿔이 인상적이다. 짧은 풀을 먹고 매일 물을 먹는 식성을 가진다. 그 식성 때문에 비를 쫓아 초지를 옮긴다.
물을 찾는 진화한 후각은 나침반이다. 그래서 나침반에 기댄 수십만 마리 누의 행렬은 그야말로 경이롭다.
대이동은 7월 중하순에서 9월까지다. 매년 100만 여 마리가 1,660km에 달하는 극단의 여정에 나선다. 50만 마리의 5~6개월령 새끼도 같이다. 얼룩말도 20% 정도 함께 한다. 이는 생존의 방패를 더하기 위해서다.
키가 큰 풀은 얼룩말이, 작은 풀은 누가 먹는다. 또 얼룩말의 시력은 포식자를 경계하고, 누의 후각은 물을 찾을 찾아낸다.
리더는 소집단에만 존재한다. 무리는 리더나 동료의 냄새에 의지하여 걷고 또 달린다. 리더에 따라 생사도 다르게 갈린다.
케냐와 탄자니아 접경, 가장 위험한 ‘마라강’이 막아선다. 수천 마리의 누 떼가 가파른 비탈을 미끄러진다.
리더가 강물에 뛰어들자 나머지도 뒤를 따른다. 맞은편 강둑을 향해 사지의 힘을 다 쏟는다. 대부분은 건너지만 일부는 익사하고 압사한다.
포식자의 공격을 받는다. 매년 7천여 마리의 누가 그렇게 희생된다. 악어의 밥이 되고 맹수는 배를 채운다. 사체는 물고기나 수생곤충의 먹이가 된다. 식물의 양분이 된다.
진전된 연구에 의하면 누의 대이동은 사바나의 활력소다. 건강한 먹이사슬의 지표이다. 포식자와 피포식자의 개체수를 지탱하는 사건이다.
집단 먹이 활동으로 탄소를 흡수하고 토양은 배설로 인해 비옥해진다. 숲이 늘어난다. 생태적 선순환이 인다.
관광객들이 몰려 지역주민의 생계를 이롭게 한다. 자연 생태계의 지휘자고 해결사다. 더한 깨달음을 주었다.
다시 새해 벽두 기억으로...요즘 지역 정치의 생태계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정치인이 편을 나누고 자기편을 위해 싸우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정치적 행위가 공공의 이익을 획득하려는 행위인지, 공적인 결정 과정에서 일관성과 합리성이 있는지를 묻는다.
주민들이 오히려 정치를, 정치인을 걱정하는 반전... 정치인이 자신의 안위와 생존에 매몰되어 정치의 선후를 뒤섞다고 말한다.
더욱이 정치인에게 포식자들로부터 새끼를 보호하는 누처럼 한 번이라도 무리를 위해 무언가를 해봤냐고 따진다.
초원 위 누의 발자국이 생과 사의 기록이듯이. 별안간 누의 기억을 소한한 이유다. 무너진 정치 생태계에서 누처럼만 하라고.
정치인은 지역의 자양분이 되고 끊임없이 공공의 편익을 고양해야 한다. 이종적 공존마저 허해야 한다.
혹 정치적 후각이 없는 정치인이라면 작파하라. 그게 병오년 누에게서 배우는 지역정치 문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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