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영식 문학박사‧문학평론가‧시인
한여름 고추잠자리 머리 위로 길 안내하는 눈부신 햇살 따라 멋진 풍경을 그리며 일행은 용문산 산행에 나선다. 차 속에 이는 환희와 흥겨운 놀이를 흥미롭게 바라본다.
노래와 춤, 녹 익은 입담 속 술잔치에 일행은 지탱키 어려웠던 여름 더위의 징검다리를 털어낼 섭리를 잊어버리려 하는 듯했다.
묵은 바람 밀어낼 슬기와 좋은 분위기에 적당히 마셔, 취한 향기의 삶이 더없이 풍요로워져 진 영국 속담을 떠올리니, 그 실감이 더 배가된다.
이를테면 한잔 술 띄우니 하루의 기분 좋아져 부족함 지워지고, 두 잔술 기울이니 기분이 좋아져 화려한 왕관을 쓴 듯 가슴 벅찰 즐거움으로 인류사를 진화시킨 술….
헌데, 심기 불편할 석 잔 술은 건강을 잃게 할 그 사실 잊고 살아간 인간과 술의 관계는 흥미로운 질문거리를 도출한 뿌리에 대해 어떤 이는 광약(光藥)과 광약(狂藥) 사이 두 ‘얼굴’로 논리 정연하게 펼쳐 낸 술의 과학(유익한 삶의 창조 방법 구현)과 철학(삶의 목적과 가치 탐구한)의 이치를 생각해 보고 또 생각해 보았다.
그 원류는 제천 행사 시 인간 존엄성을 위해 하늘과 함께 취해 재앙을 막은 동시대 삶의 풍요를 기원함에서 광약으로서 의미로 한편으론 투명한 서양신화는 박카스(주신)와 디오니소스 신이 이카리오스 신에게 술 빚는 비법을 전수해줬으나, 후자의 신은 자기가 만든 술로 인해 최후를 마치는 광약(狂藥)으로서 서사를 조명할 뿐이었다.
그와 같은 명암(明暗)의 기대 속에서 오늘의 사회는 무엇을 기원하고 또 어떤 미명을 밝혀내 보려고 술 권하는 문화를 지속시켜 나가려 했는지 의문만 커갈 뿐, 혹여 현대인의 각종 스트레스가 문제인가, 아니면 일방적인 잦은 퇴폐적인 회식 문화에 기인하는 것일까.
개인적 생각으론 고압적이고 피할 수 없는 각종 모임에, 짧은 시간 내 확 달아오르게 하려는 ‘폭탄주’ 등 권위주의 물결침 속에 ‘빨리빨리’하고자 하는 악행 사유로서 또는 술 권하는 악습에 익숙해짐이라고 유추해 보고 싶었다.
사실 술 권하는 사회의 내면을 꿰뚫어 보니 실로 크게 문제가 될 뿌리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문자 그대로 약주(藥酒)로서 보약의 의미만 있었으며 더해 인간과 농경신을 밀접하게 매개시켜 ‘풍요와 안빈(安貧)’의 연결 구실을 하고 있었음이 동서 고래로의 진화 맥락이었다.
이렇게 생각해 보니 술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올바른 주도(酒道)를 배우지 못한 현재 술 문화가 판을 치는 사회에서 간과해서는 안 될 교훈으로서 다음의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하니까 세월을 새김질한 ‘채근담’에서 엄연한 서사는 ‘꽃은 반만 피었을 때가 가장 아름답고, 술은 적당히 취해 있을 때가 가장 아름답다’란 이 어귀는 꼭 귀담아들을 만한 경구라 되리라.
자유롭게 술을 소비하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평등의 상징이 된 술 권하는 사회의 악습에 익사되고 있음에서 술이 지닌 두 ‘얼굴’의 경이와 공포의 문제점을 항상 뒤돌아보고 건실한 생각과 함께 기품있는 문화생활을 기대하는 우린 항상 목적과 가치를 지향하기에 모든 만물이 철학과 과학의 지배를 받는다면 우리 인간도 예외가 아니라는 우려점은 꼭 지켜져야만 할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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