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홍 전 군장대학교 명예교수
춘고 선생은 가난과 병마 속에서 서수면 한촌(寒村)의 작은 집에서 62세를 넘기지 못하고 쓸쓸히 임종을 맞았다. 노 독립운동가는 한평생을 조국의 광복과 고향의 인재양성에 헌신했다.
선생이 가신 지 60여 년이 지났지만, 월명공원에는 동상이, 임피중학교에는 석상이 건립돼 있다. 석상 정면에 “사랑하는 제자들아, 내 인생의 후배들아, 책을 가까이해 후회 없는 삶을 살기 바란다”라는 문구가 음각돼 있다.
선생은 자전거를 타고 가가호호 찾아다니며 가난한 농촌 아이들이 “배워야 사람 노릇을 한다”며 그들 부모들을 설득했던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참된 스승이었다.
필자는 이제라도 선생의 생가를 지나는 도로명 ‘항쟁로’가 ‘춘고 항쟁로’로 개명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아울러 선생이 마지막으로 병마와 싸우며 임종을 맞이했던 ‘서수 집’(서수면 서수리 774번지, 572㎡)을 군산시가 매입해 그의 숭고한 기개와 교육 정신을 후대에 전하는 ‘춘고 독립기념관’으로 조성할 것을 제안한다.
그것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헌납하시고도 가난 속에서 세상을 떠난 위대한 선각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이자 도리이기 때문이다.
문병준 전 시의원은 1990년대 초 광복회 행사 때 춘고 선생의 동상 기단 아래에 쌀 3포대를 바치며 지난 과오를 고백했다.
그의 양심선언은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거목이 말년에 국가와 사회로부터 얼마나 철저히 외면당하고 방치됐던가를 세상에 알린 증언이었다.
제자에게 쌀 한 말조차 당당히 요구하지 못하고 “쌀이 있으면 좀 주면 좋겠다”라며 조용히 사정을 해야 했던 노 독립운동가의 정갈한 염치, 그리고 그 마지막 부탁을 잊고 살았던 제자의 뒤늦은 참회는 500억 원대에 달하는 독립군자금 공채 상환을 외면한 국가의 무책임을 향해 경종을 울리는 역사적 기록으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정권이 바뀌어도 독립공채는 끝내 미상환으로 잊혀졌고 독립군자금을 헌납한 춘고 선생이 가난 속에 굶주릴 때 정부는 쌀 한 줌도 보태주지 않았다.
참혹한 방치와 배신 속에서 선생은 눈을 감았지만, 이 땅과 고향 사람들의 가슴속에는 차마 씻어내지 못한 부끄러움이 한가닥 양심으로 남아있다.
군산 월명공원 언덕 위에 세워진 춘고 이인식 선생의 동상, 그것은 무책임했던 국가를 대신해 선생의 거룩한 희생을 기억하던 지역사회와 후대가 남긴 눈물겨운 사죄의 증표였다.
춘고 선생이 한복을 정갈하게 차려입고 공원 전망대 앞에 서계신다. 금방이라도 환생하시어 동상에서 내려와 군산시민들의 삶을 돌아보실 것만 같다.
선생의 동상을 춘고원에 입지할 때 군산시민들과 임피중학교 제자들의 의견이 하나가 돼 군산시와 옥구들녘의 모습을 내려다 보시도록 좌향을 결정한 것은 참 잘한 일이었다.
<본 수필은 본사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