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고 있는 곳은 군산시 서수면이다.
매일 부르고 듣는 ‘서수’라는 두 글자를 우리는 너무도 익숙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 이름을 한자로 쓰면 瑞穂다. 상서로울 서(瑞), 이삭 수(穂). 풍년을 바라는 의미가 담긴 이름이다.
그런데 이 두 글자를 일본에서는 어떻게 읽을까. みずほ(미즈호)라고 읽는다.
여기서부터 이야기가 흥미로워진다. 일본의 고대 기록을 찾아가면 ‘瑞穂’라는 말은 단순히 벼 이삭을 뜻하는 보통명사에 머물지 않는다.
‘고사기’와 ‘일본서기’에는 豊葦原瑞穂国(とよあしはらのみずほのくに‧도요아시하라 미즈호노 쿠니)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갈대와 벼 이삭이 풍요롭게 자라는 나라’라는 뜻으로, 고대 일본 신화에서 일본 국토를 아름답게 표현한 명칭 가운데 하나다.
따라서 우리가 한자 그대로 ‘서수국’이라고 읽을 수는 있지만, 이것을 별개의 고대국가가 실제로 존재했다는 뜻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정확히 말하면 ‘미즈호의 나라’, 즉 일본 국토를 상징적으로 표현했던 고대의 미칭이다.
그렇다면 왜 군산의 한 농촌마을 이름에 일본의 고대 국토를 상징하던 瑞穂라는 두 글자가 들어오게 되었을까.
현재의 서수면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이 지명의 형성과정에는 일제강점기의 역사와 일본인 농장 경영의 흔적이 얽혀 있다는 지역사회의 문제 제기도 이어져 왔다.
이 때문에 서수라는 지명을 바라보는 주민들의 생각도 하나일 수 없다. 누군가는 풍년을 기원하는 아름다운 이름이라고 생각하고, 누군가는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지명이므로 식민지 역사의 흔적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오래전 일본에서 공부하던 시절부터 이 이름이 마음에 걸렸다. 그런데 한일의 역사를 조금 더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더욱 복잡해진다.
일본 사이타마현 히다카시에는 지금도 高麗(こま·고마)라는 지명이 남아 있다. 716년 고구려계 사람들이 이주하면서 高麗郡이 설치됐고, 오늘날에도 高麗神社, 高麗川 등의 이름이 남아 있다. 여기서 ‘高麗’라는 한자는 우리가 흔히 ‘고려’라고 읽지만 역사적으로는 고구려계 도래인과 관련된 이름이다.
백제의 흔적은 더욱 많다. 오사카에는 과거 百済郡(くだらぐん·구다라군)이 있었고, 지금도 百済大橋, 百済公園, 南百済小学校와 같은 이름이 남아 있다. 히라카타시에는 백제 왕족 후손과 관련된 百済寺跡(くだらでらあと)도 남아 있다.
신라도 마찬가지다. 현재의 사이타마현 니자시 일대에는 758년 新羅郡(しらぎぐん·시라기군)이 설치됐고, 이후 명칭이 변하면서 오늘날의 니자(新座)라는 지명으로 이어졌다고 전해진다.
이런 지명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한반도와 일본열도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었지만, 사람과 기술과 문화는 수없이 바다를 건넜다.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주고 어느 한쪽이 받기만 한 관계가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는 오랫동안 한일관계를 두 개의 극단에서 바라보곤 했다.
나라가 가난하던 시절에는 일본의 경제력과 기술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낮추는 열등의식이 존재했다. 반대로 대한민국이 세계적인 산업국가로 성장하고 문화와 기술에서 자신감을 갖게 되면서 때로는 일본을 지나치게 낮춰 보는 우월의식도 나타난다.
나는 이제 두 가지 모두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역사는 역사대로 정확히 기억해야 한다.
일제강점기의 침탈과 수탈을 잊어서도 안 되고, 옥구와 서수 농민들이 불의에 맞섰던 역사 역시 제대로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기억하는 것과 미래를 만드는 것은 다른 문제다.
과거 때문에 영원히 상대방을 미워하는 것도 성숙한 자세가 아니며, 오늘 우리가 조금 잘산다고 과거의 역사와 상대방을 가볍게 바라보는 것도 성숙한 자세가 아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열등감도 우월감도 아닌 자신감이다.
그리고 그 자신감 위에서 한일관계를 철저하게 실용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나는 그 출발점 가운데 하나가 뜻밖에도 ‘서수(瑞穂·みずほ)’라는 이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인에게 ‘미즈호’라는 단어는 낯설지 않다. 풍요로운 벼와 농경문화를 연상시키는 이름이다. 우리 서수 역시 넓은 들판과 쌀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 이름을 과거의 논쟁 속에만 가두어 둘 것이 아니라 미래의 자산으로 바꿔보면 어떨까.
‘SEOSU 瑞穂 RICE’, ‘SEOSU MIZUHO’. 그리고 군산 서수의 역사와 농민의 이야기를 담은 즉석밥·냉동김밥·쌀과자·쌀가공식품. 단순히 상품 하나를 파는 것이 아니다.
한국의 서수와 일본의 ‘미즈호’라는 언어적·문화적 접점을 이야기로 만들고, 일본의 高麗·百済·新羅의 역사적 흔적과 연결해 민간교류의 소재로 활용하는 것이다.
서수 주민과 일본의 지역주민이 만나고, 청소년과 어르신이 왕래하며, 농식품 기업과 농민이 함께 제품을 만들고, 지역축제에서 서로의 상품을 판매하는 교류라면 거창한 외교보다 오히려 오래갈 수 있다.
첫 번째 칼럼에서 나는 군산 쌀의 ‘두 번째 현해탄 횡단’을 이야기했다.
이번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싶다.
쌀만 바다를 건너서는 안 된다. 사람과 이야기와 지역의 이름도 함께 바다를 건너야 한다.
서수라는 두 글자에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아픈 역사도 있고, 한일 양국이 오랫동안 영향을 주고받았다는 더 오래된 역사도 숨어 있다.
이제 그 이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과거에는 역사가 우리를 끌고 갔다면, 이제는 우리가 역사를 활용할 차례다.
서수(瑞穂·みずほ). 작은 농촌마을의 이름 하나를 한일 민간교류와 군산 농식품의 브랜드로 바꾸는 일. 나는 그것도 지역이 역사를 기억하는 하나의 성숙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본 칼럼은 본사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