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홍 전 군장대학교 명예교수
필자가 쓴 가을을 노래한 시 ‘추수’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아낙네들은 홀테에 바쁘게 훑은 나락의 먼지를 풍구에 날리고 내리쬐는 가을 햇살에 고무래질로 벼를 펴 말린다.”
가을 타작마당의 분주함과 농민들의 숭고한 노동을 노래한 구절이지만, 요즘 도시에서 자란 어린 학생들에게 이 시를 읽어주면 가슴속에 깨끗하고 맑게 받아들여질까. ‘홀테’, ‘풍구’, ‘고무래’가 어떤 도구인지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농기구의 시각적·청각적 이미지를 상상할 수 없는데 어찌 시의 진정한 가치와 순수한 정서를 온전히 감상할 수 있겠는가.
농촌에서 자란 나는 농촌 생활 속에서 이를 몸소 체험했다.
일찍이 옥구농민항일항쟁유족회 문병준 회장은 살아생전에 관내의 농가 주민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사라져가는 농기구 보존을 위해 주민들의 협조를 구했다.
그래서 고인은 주민들로부터,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아 전답을 가꾸던 114건 373점의 농기구를 기증받을 수 있었다. 양적으로 보면 김제 벽골제농경문화박물관의 소장량보다 많을 것이다.
이들은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의 전통사회에서 농가에 없어서는 안 될 기구들이었다.
1927년 일제의 혹독한 수탈에 맞서 싸운 옥구농민들의 피와 땀, 그리고 저항 정신이 그대로 배어 있는 ‘농민항쟁 유산’이기도 하다.
문 회장은 이 고귀한 농업 유산들을 토대로 번듯한 ‘농기구 전시관’을 이엽사가 있던 임피중학교 입구에 건립하는 것이 꿈이었다.
사라져가는 내 고장 농촌 문화를 지키고, 아이들에게 살아있는 역사 교육의 장을 열어주고 싶었다.
그러나 예산과 공간 확보의 현실적 장벽 앞에 결국 소장한 농기구들을 근대역사박물관에 기증하고 말았다.
공공의 영역에서 더 많은 이들에게 빛을 발하리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 군산시는 이 소중한 농기구들을 박물관 지하 수장고의 어둠 속에 방치하고 있다. 기증의 본질은 공익을 위한 ‘활용’이지 창고 채우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농민들이 기증한 농기구가 선반 위에서 먼지만 쌓여가고 있는 현실은 필자로 하여금 깊은 탄식을 자아내게 한다.
이럴 거라면 차라리 농기구의 가치를 알아보고 진정성 있게 대접해 줄 성의 있는 타 기관에 양도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시민들은 내 고향 군산에 오직 대기업이나 첨단 산업만이 들어오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기술을 선도하는 중소기업과 우리의 뿌리인 농업이 단단하게 공존하는 첨단농업 도시가 되길 바란다. 과거를 모르는 첨단은 모래성 위의 기술일 뿐이다.
바람을 일으켜 알곡을 고르던 ‘풍구’의 과학적 원리가 어떻게 오늘날 ‘첨단 AI 농업의 기류 제어 기술’로 진화했는지 아이들이 직접 비교하며 배울 때, 비로소 미래 농업 기술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게 될 것이다.
이제 군산시는 창고를 열고 농기구들을 어린 학생들의 교육 현장으로 돌려주어야 한다.
당장 독립된 전시관 조성이 어렵다면, 군산교육지원청과 연계하여 학교 교실로 유물을 싣고 찾아가는 ‘이동식 농경 체험 교실’이라도 열어야 한다.
나아가 전통 농기구의 역사와 첨단 AI 스마트팜 체험이 융합된 독창적인 교육 공간을 구축해야 한다.
군산을 전국의 학생들과 장학사들이 찾아오는 ‘대한민국 미래 농업 기술 교육의 메카’로 만드는 것, 그것이 수장고에 갇힌 농기구들을 구출하고 군산의 백년대계를 세우는 길이다.
군산시와 교육 당국의 안일한 행정을 깨우고, 조상들의 위대한 땀방울이 미래의 농업 교실에서 다시 살아 움직이기를 촉구한다.
<본 수필은 본사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