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홍 전 군장대학교 명예교수
가을 들녘이 노랗게 물드는 호남의 넓은 벌판을 바라볼 때마다 가슴 깊은 곳에 거룩하게 고이는 성함이 있다. 바로 돈헌(遯軒) 임병찬(林炳瓚, 1851~1916) 의병장이다.
최근 돈헌 선생 후손들의 모임인 ‘돈헌회’와 ‘옥구임씨종친회’가 앞장서서 ‘돈헌 임병찬 의병장 기념사업회’의 발족을 서두르고 있다.
돈헌 선생 가문은 3대에 걸쳐 4명의 독립유공자를 배출한 보기 드문 독립운동 명문가이다.
임병찬(1851~1916) 선생은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이복동생 임병대(1869~1936) 선생은 1996년 건국포장을, 아들 임응철(1871~1942) 선생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둘째 손자 임경(1897~1977) 선생은 1992년 건국포장을 각각 서훈받았으니 이 사실만으로도 참으로 놀랍고 숭고한 일이 아니던가.
그러나 최근 장손 임진(林鎭, 1889~1967) 지사의 서훈 신청을 필자에게 공식 요청해 와, 이젠 한 집안에서 무려 5명의 독립유공자가 탄생할 예정이다.
그 이유는 임진 지사야말로 돈헌 선생의 장손으로서 혁혁한 독립운동을 수행한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임진 지사는 17세의 어린 나이에 조부 돈헌 선생과 함께 의병을 일으킨 면암 최익현 선생을 모시고 도왔다.
당시 ‘병오창의’ 부대편성표상에서 맹주 최익현, 총사령 임병찬 선생의 휘하에 부대 양식과 병참을 운반하고 보급하는 운량의관(運糧議官)의 중책을 숙부 임병대 선생과 동격으로 수행했었다.
또한 조부 돈헌 선생이 대한독립의군부를 조직할 때에는 ‘통훈대부 시강원 좌시어 겸 대한독립의군부 비서국 비서’로서 조직화와 항일 연대망 구축에 전력을 다했다.
필자는 2019년 6월 25일, 순창군 회문산에 있는 돈헌 선생의 묘소를 군산문화원 이부민 이사, 평택임씨 옥구파 전임 임원들과 함께 참배한 적이 있다.
그해 연말에 있을 군산문화원 주최 ‘무성서원 병오창의 113주년 기념 심포지엄’의 자료 수집차 방문한 것이었다.
그때 돈헌 선생의 묘 앞 상석 각석에서, 장손 임진 지사가 광복 후인 1946년에 사촌동생 임현과 함께 조부의 묘역을 사초하고 안장한 정직한 기록을 명백히 확인할 수 있었다.
“資憲大夫 獨立義軍元帥府 司令總長 平澤林公 諱炳瓚之墓 乾坐 檀紀四千二百七十九年 丙戌五月一日 不肖孫 鎭 鉉 奉安”
임진 지사는 일제 경찰의 서슬 퍼런 감시 때문에 돈헌 선생께서 1916년 거문도에서 순국하신 후 회문산에 모신 조부의 묘역을 자유롭게 출입할 수조차 없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1938년에야 조부의 묘를 겨우 사초할 수 있었고, 광복 후인 1946년에야 비로소 석물 공사와 함께 묘역을 단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임진 지사의 부친 임응철 선생마저 광복을 보지 못하고 1942년에 사망하면서, 호남 최고의 독립운동가 가문이었음에도 광복 전후로 장손 임진 지사와 직계 가족들의 생계는 막막하기만 했다.
곤궁한 생활 속에서 후손들은 조부의 독립운동 사실과 증빙 사료를 가슴에 품고서도 독립유공자 서훈 신청을 미루어왔던 것이다.
최근 옥구임씨 종중회관에서 만난 임진 지사의 손자 임준식(1954년생) 선생은 독립유공자 포상 신청에 필요한 임진 지사의 공적서와 거증자료를 완벽히 준비했다.
그는 고조부로부터 이어져 온 독립운동가의 숭고한 정신을 잇기 위해 미국 이민을 포기하고 영주 귀국을 했다.
남은 여생을 군산에 머물면서 ‘사단법인 돈헌 임병찬 선생 기념사업회’를 연내 발족하고 선양 사업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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