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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수필>항일 의병장 돈헌 임병찬 선생을 기리자②

군산신문2026-10-16 13:38:04 링크 인쇄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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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홍 전 군장대학교 명예교수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일제의 서슬 퍼런 헌병 경찰 통치가 온 국토를 짓누르던 암흑기, 호남의 들녘에서는 나라의 주권을 되찾기 위한 거대한 항일 비밀 조직의 핏줄이 도도히 흘러가고 있었다.

 

바로 1912년 고종 황제의 밀지를 받아 결성된 한말 최후이자 일제강점 초기 최대의 비밀 항일 정부 조직인 ‘대한독립의군부(大韓獨立義軍府)’이다. 독립의군부는 결코 일회성 의기에 그친 모임이 아니었다.

 

총사령 돈헌(遁軒) 임병찬(林炳瓚‧1851~1916) 선생을 중심으로 전국 13도와 각 부·군 단위까지 그물망 같은 비밀 통신·행정 조직을 갖춘 치밀한 항일 사령부였다. 

 

그 조직의 중심에서 전국 비밀 연락망을 진두지휘한 인물이 바로 임피군 출신 통신국장(通信局長) 문형모(文衡謨‧1875~1952) 선생이었으며, 중앙의 문서와 조직 기틀을 총괄 관리한 인물이 돈헌 선생의 장손이자 시강원 좌시어 겸 비서국 비서(祕書局 祕書) 임진(林鎭‧1889~1967) 지사였다.

 

1906년 병오창의 당시 17세의 연소한 나이로 숙부 임병대 선생과 완벽히 동격인 ‘운량의관(運糧議官)’으로 참전해 의병대의 식량과 병참을 책임졌던 장손 임진 지사는 독립의군부 창설에 이르러 중앙 비서국의 핵심직을 맡았다.

 

임피군 출신 통신국장 문형모 선생이 목숨을 걸고 전국 도·군 대표진과 비밀 통신망을 가동해 국권 반환 요구서와 연명 서명을 모아 올리면 비서국 비서 임진 지사는 이를 체계적으로 정돈하고 중앙 사령부의 기밀문서와 조직망을 관리하는 중책을 수행했었다.

 

이는 독립의군부가 일제의 강압적 국권 침탈에 맞서 전국적인 항일 연대망을 완벽히 구축할 수 있었던 정직한 동력이었다.

 

일제의 감시망이 좁혀오고 1914년 조직이 노출돼 돈헌 선생이 거문도로 유배돼 단식 순국하시는 참혹한 수난 속에서도 이들이 구축한 비밀 조직망은 훗날 1919년 군산 3·5만세운동과 만주 무장 독립군 투쟁의 단단한 역사적 토양이 됐다.

 

돈헌의 가문은 이미 임병찬(독립장), 이복동생 임병대(건국포장), 아들 임응철(애족장), 둘째 손자 임경(건국포장) 등 3대에 걸쳐 4명의 독립유공자를 배출한 불멸의 명문가이다.

 

그러나 17세에 병오창의 운량의관으로, 이어 독립의군부 비서국 비서로 헌신한 장손 임진 지사의 공적은 일제 경찰의 서슬 퍼런 감시와 광복 전후의 눈물겨운 곤궁함 속에서 오랫동안 서훈 신청이 미뤄져 왔다.

 

최근 미국에 머물던 임진 지사의 손자 임준식(돈헌의 현손)이 미국 이민까지 포기하고 영주 귀국해 회문산 묘소의 1946년 각석 물증과 1차 사료를 완벽히 정돈해 냄으로써 한 가문에서 무려 ‘3대 5명 독립유공자’가 탄생할 역사적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

 

종이 서류의 한계를 넘어 묘소 상석의 각석과 역사 사료가 증언하는 장손 임진 지사의 공적을 바로 세우는 일은 단지 한 개인의 명예 회복을 넘어 한말 최고 의병 가문의 항일 혈맥을 완벽히 완성하는 향토사학적·보훈적 사명이다.

 

문형모 통신국장과 임진 비서국 지사가 가슴 품었던 그 뜨거운 구국의 비밀 연명서 위에 이제 오늘을 사는 우리가 정직한 감사의 마음으로 응답해야 할 때다.


<본 칼럼은 본사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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