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호 (사)서수면사람들 이사장
지난 글에서는 무궁화문화복지센터가 누구를 위한 공간인지 물었다.
주민들이 계획하고 운영을 준비한 공간에서 주민조직이 밀려났다면 문제는 방 한 칸의 사용권에 그치지 않는다.
기존 주민조직을 배제한 행정이 다시 ‘주민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새 사업을 추진한다는 더 큰 모순이 남는다.
서수면 농촌중심지활성화사업은 주민 없는 행정사업으로 출발하지 않았다.
추진위원회가 공모를 준비했고 운영위원회가 한국농어촌공사와 계획·설계, 주민교육과 운영 준비를 이어갔다.
사단법인 서수면사람들도 정관에 사업 승계를 명시했다. 명칭과 법적 형태는 달라졌어도 주민들의 경험과 책임은 이어졌다.
그러나 행정은 이 연속성을 인정하고 역할을 조정하기보다 기존 조직의 기반을 약화시키고 새로운 주민위원회를 중심으로 후속 사업을 추진하려 했다.
새 위원회 구성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하지만 새로움이 과거를 지우는 면허는 아니다.
기존 조직을 기록으로 평가하고 인수인계와 역할 조정을 거쳐 참여를 넓히는 것이 정상적인 절차다. 기존 조직에 문제가 있었다면 군산시는 구체적으로 밝혔어야 한다.
회계는 점검하고 폐쇄적 운영에는 공개 기준을 요구하며, 특정인의 전유가 우려됐다면 주민 모두에게 열린 규정을 만들면 된다.
개선 절차 없이 조직 전체를 불편한 존재로 취급하고 다른 조직으로 갈아 끼우는 것은 해결이 아니다. 주민참여는 행정의 뜻에 잘 따르는 사람을 골라 세우는 제도가 아니다.
사업 능력과 지역 비전보다 ‘행정에 얼마나 협조적인가’가 대표 선정의 기준이 되고, 순응하는 사람은 검증 없이 세우면서 질문하고 대안을 내는 주민을 밀어낸다면 주민대표는 행정의 대리인으로 전락한다. 이는 주민참여가 아니라 주민 선별이다.
예산이 이런 관계를 굳히는 도구가 돼서는 안 된다. 중앙정부 지원금은 지방정부의 쌈짓돈이 아니다.
사업비와 자리, 활동 기회를 특정 단체와 사람에게 배분하며 순응을 유도한다면 예산이 주민을 줄 세우는 회유 수단처럼 작동할 수 있다.
그 결과 필요한 사업보다 사진이 잘 나오는 행사와 보고용 사업이 반복된다. 예산만 집행되고 지속할 조직과 수익모델이 남지 않는다면 농촌활성화라 할 수 없다.
농촌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지역에서 오래 살아오며 토지와 농업, 사람과 역사를 몸으로 익힌 주민이다. 1~2년 근무한 뒤 자리를 옮길 공무원이 주민보다 지역의 미래를 잘 안다고 전제하는 것은 위험하다.
임기 동안 문제만 없으면 된다는 태도로 예산권과 결정권을 행사하고 자신에게 편한 사람을 대표로 선택한다면 혁신은 나올 수 없다.
정당한 주민위원회라면 구성 과정부터 공개해야 한다. 위원 추천·선정 기준과 주민 전체의 참여 기회, 다른 의견을 가진 주민의 발언 기회가 있었는지 밝혀야 한다. 회의와 의결사항, 예산과 사업계획도 공개해야 한다.
기존 주민조직 역시 회계와 의사결정, 성과를 공개할 책임이 있지만 책임을 요구하는 것과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군산시는 기존 주민조직의 연속성을 어떤 근거로 판단했는지, 후속 위원회의 구성 기준과 권한은 무엇인지, 협의와 인수인계가 왜 없었는지 기록으로 답해야 한다.
농촌활성화는 사람을 바꾸어 끼우는 행정기술이 아니다. 예산과 대표 선정권으로 주민을 길들이고 기존 조직을 배제한다면 주민주도는 구호가 되고 어떤 새 사업도 공동체를 살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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