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점남 호원대학교 글로벌관광학과장
한 사람의 삶이 세대를 넘어 살아 있는 배움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오래전 누군가의 헌신이 오늘의 청년들에게 새로운 물음을 던지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면 그 기억은 더 이상 과거에 머무르지 않는다.
대학 교양과목 ‘기업가정신과 인문학’을 가르치며 나는 한 가지 물음을 품어 왔다. 기업가정신을 반드시 성공한 기업인의 삶을 통해서만 배워야 할까.
경제적 성취뿐 아니라 사회문제를 발견하고 공동체의 변화를 이끄는 실천에서도 그 본질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수강생들의 전공과 학습 경험, 지역적 특성을 고려해 수업을 새롭게 설계했다.
간호학, 응급구조학, 물리치료학, 사회복지학, 실용음악 등 서로 다른 분야를 공부하는 학생들이 자신의 전문성을 타인의 삶과 사회에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지 성찰하도록 돕고 싶었다.
그 과정에서 수업의 중심에 놓은 인물이 쌍천(雙泉) 이영춘(1903~1980) 선생이다.
군산을 주요 활동 무대로 삼아 농촌 주민들의 건강과 교육, 돌봄에 헌신한 인물이지만, 지역에서 공부하는 다른 전공의 대학생들에게는 그 삶과 업적이 다소 낯선 이름이었다.
◇한 사람의 헌신에서 공동체의 가치를 배우다
1935년 군산 자혜진료소에 부임한 이영춘 선생은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데 머무르지 않았다.
가난과 열악한 생활환경 속에서 질병이 반복되는 현실을 마주하며, 주민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방법을 모색했다.
선생의 실천은 진료를 넘어 예방과 위생, 연구와 교육, 돌봄으로 확장됐다.
개정중앙병원과 농촌위생연구소를 설립하고 보건인력을 양성하며, 공동체의 건강과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데 힘썼다.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 그는 한국 농촌보건과 사회사업의 역사에 의미 있는 유산을 남겼으며, 사후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추서됐다.
선생의 삶은 군산의 소중한 역사이자 우리 사회가 함께 기억해야 할 나눔과 실천의 유산이다.
수업에서는 이러한 삶을 사회적 기업가정신의 관점에서 살펴보고, 인(仁)·의(義)·지(智)·신(信)의 인문학적 가치와 연결했다.
나아가 현대 ESG 경영이 강조하는 사회적 책임과 지속가능성의 의미도 함께 생각했다.
시대와 개념은 달라도 인간을 존중하고 공동체에 책임을 다한다는 가치는 오늘날에도 유효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언어로 다시 살아난 나눔의 정신
수업은 역사적 사실의 이해에서 출발해 가치의 해석과 조별 토의, 전공별 사회문제 탐색과 실천계획 수립으로 이어졌다.
수업을 마치며 학생들에게 질문을 건넸다. “무엇을 배웠는가. 무엇을 느꼈는가. 그리고 자신의 전공을 통해 무엇을 실천할 것인가.”
학생들은 ‘배운 점·느낀 점·실천할 점’을 나누는 ‘배·느·실’ 활동과 함께, 3일 또는 7일 안에 시작할 수 있는 행동을 구체적으로 적었다.
그들의 글에는 감동을 넘어 삶의 문제를 새롭게 바라보려는 고민이 담겨 있었다.
간호학과 노○완 학생은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진심으로 돕는 태도의 중요성을 되새겼다.
사회복지 전공 현○수 학생은 고령층과 장애인의 디지털 정보 격차에 주목하며 지역 복지관 조사와 자원봉사 참여를 계획했다.
실용음악 전공 임○석 학생은 자신의 능력을 다른 사람을 위해 사용하겠다고 다짐했다.
김○준 학생은 소규모 음악인들의 정보와 기회 부족 문제를 발견하고, 동료들과 공연 및 정보 공유 방안을 논의하겠다고 했다.
응급구조학과 학생은 응급처치 지식을 활용해 위급한 상황에서 도움을 주겠다는 계획을, 물리치료학과 학생은 주변의 어려움을 살피고 작은 봉사부터 실천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일부 학생의 소감만 소개하지만, 서로 다른 전공의 학생들이 한 인물의 삶을 자신의 언어로 해석하고 실천의 방향을 구체화했다는 점은 의미 있게 다가왔다.
특히 음악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의료인의 삶에서 협력과 상생의 가치를 발견한 모습은 인문학적 배움이 전공의 경계를 넘어설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배움이 삶으로 이어지는 교육을 위해
학생들의 소감문을 읽으며 교육의 성과를 다시 생각했다. 지식을 얼마나 정확히 기억하는가도 중요하지만, 배운 내용을 자신의 삶과 연결하고 사회문제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능력 역시 소중하다.
물론 한 주차의 수업과 소감문만으로 행동의 변화나 교육의 지속성을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학생들이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자신의 역량으로 해결의 첫걸음을 구상했다는 점에서 교육적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실천계획을 다시 살펴보고, 경험과 어려움을 공유하며, 그 결과를 다음 수업에 반영하는 일이다.
지역사회와 연계한 실천의 기회를 넓혀 가는 것 또한 교육자의 책임이다. 배움이 성찰로, 성찰이 행동으로, 행동이 다시 배움으로 이어질 때 교육은 삶 속에 뿌리내린다.
◇한 시대의 헌신을 다음 세대의 가치로
이영춘 선생의 삶은 군산이라는 지역의 역사를 넘어 한국 사회의 소중한 유산으로 남아 있다.
선생이 보여준 인간 존중과 사회적 책임, 나눔의 정신은 오늘의 청년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배움의 가치다.
오는 11월 14일 열리는 제4회 쌍천 학술제 역시 그의 업적을 기리는 데서 나아가, 그 정신을 오늘의 교육과 삶 속에서 어떻게 이어갈 것인지 성찰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수업의 마지막에 학생들에게 질문을 건넸다. “10년 후, 나는 어떤 사회적 흔적을 남기고 싶은가.”
그 질문은 교육자인 나 자신에게도 향했다. 나는 학생들에게 어떤 배움을 남기고 있는가.
그들이 자신의 지식과 능력을 타인의 삶을 위해 사용하는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돕고 있는가.
학생들의 실천 선언은 아직 작은 약속일지 모른다. 그러나 자신의 배움을 타인의 삶과 연결하려는 마음이야말로 교육이 길러야 할 소중한 가능성이다.
감사는 앞선 세대의 헌신을 기억하는 마음에서 시작되고, 나눔은 그 깨달음을 행동으로 옮길 때 깊어진다.
한 사람의 헌신이 우리 사회의 유산이 되고, 그 유산이 미래 세대의 배움으로 이어지며, 배움이 다시 나눔과 실천으로 확장되는 것.
그것이 쌍천 이영춘 선생의 삶을 가르치며 새롭게 확인한 교육의 가치이자, 교육자로서 오래 지켜가고 싶은 믿음이다.
<본 칼럼은 본사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